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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관리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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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얼 래더맨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78)는 미국의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그녀는 많은 여성 작가가 여전히 그렇듯이, 집 밖에서는 미술가지만, 집 안에서는 흔히 하찮게 여겨지는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주부가 되었다. 유켈리스는 이처럼 미술가와 주부 사이의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 청소와 빨래 등을 미술관에서 퍼포먼스로 재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를 '유지관리예술'이라고 불렀다. '유지관리'란 청소와 빨래, 설거지 등 가정이나 건물을 보살피는 노동을 말한다.

유켈리스의 대표적인 유지관리예술인 '전달'은 미국 최고(最古)의 공공 미술관인 하트퍼드시 워즈워스 학당 미술관에서, 미라가 보관된 유리 진열장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우선 미술관 청소부가 늘 하던 대로 유리 진열장을 걸레로 닦았다. 그는 유켈리스에게 걸레를 전달했고, 유켈리스는 다시 진열장을 닦은 후, 이번에는 미술관 학예사에게 그 걸레를 주었다. 미술가가 닦기 전의 진열장은 평범한 진열장이었지만, 닦은 후의 진열장은 퍼포먼스 예술품이 된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청소부가 손을 댈 수 없고, 반드시 예술품 보존 전문가인 학예사가 닦아야 한다.

사진 속의 세 사람, 즉 청소부·미술가·학예사는 같은 걸레로 같은 진열장을 닦았지만, 그 결과물이 사회에서 누리는 가치는 판이하다. 청소는 최저 임금을 받는 하층 노동이고, 학술은 고급 전문직이며, 예술은 최고의 부가가치를 인정받는 창조 활동인 것이다. 유켈리스는 이처럼 단순한 퍼포먼스를 통해, 같은 노동에 대해 다른 대우를 당연시하는 현대사회의 구조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