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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정치는 대부분 독재정권의 말기적(末期的) 증상에 해당한다

오리지널마인드 2018. 2. 10. 09:59
김정은의 공식 행사에서 자주 눈에 띄던 김여정은 어느새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라는 묵직한 직함을 지닌 채 사실상 김정은의 특사(特使) 성격으로 우리를 방문했다. 북한의 노련한 최고위층 엘리트들이 제거된 공백(空白)을 어린 김여정이 대신하는 모양새다. 김정은 특유의 음악 정치와 이미지 정치에서 느껴졌던 여성적 섬세함에서 김여정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김여정은 김정은 가족 정치의 핵심으로 사실상 정치적 동반자이다. 문제는 30대 초반의 두 오누이가 북한 국정 전반과 외교를 좌우하는 가족 정치의 한계이다. 이들이 북핵 개발의 무모함과 이로 인해 초래될 후과(後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정 전반을 이해하는 조언(助言) 그룹을 배제한 가족 정치는 대부분 독재정권의 말기적(末期的) 증상에 해당한다. 김정은 정권의 안정은 끊임없는 유혈 숙청과 폭력적 주민 통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민심의 이반(離反)을 수반하는 취약한 구조를 내재하고 있다. 대부분 독재정권이 외형상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촉발 요인으로 붕괴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모인 김경희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김정은의 가족 정치는 점차 더 두 오누이의 위험하고도 독단적인 결정에 의존하게 될 개연성이 있다.

국제무대 경험이 전무(全無)하고 외교 의전이나 고도의 북핵 담론을 알 리 없는 김여정의 방남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김여정의 파격적 방남으로 현 난국을 풀어나갈 수 있다고 김정은이 판단했다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김여정의 방남을 평가절하할 일도, 지나친 기대도 금물이며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효과적으로,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김여정을 통해 현 상황의 엄중성을 설득하고, 우리의 선의(善意)가 일방적 양보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평화를 위한 결단이라는 점을 김정은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그렇지 않으면 '포스트(post) 평창 국면'에서 한국 정부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해야 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