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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아메리카 퍼스트’, 북한 문제는 ‘재팬 퍼스트’(네이션지)다
오리지널마인드
2017. 10. 17. 14:56
지난 4일 밤 10시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현장으로 향하던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화를 받았다. 위로 인사말이 끝나자 트럼프는 바로 북핵 문제로 들어갔다. 첫마디는 “신조, 내가 뭘 하면 되나.(Shinzo, What should I do?)” 두 사람의 12분간 대화록을 봤다는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두 가지 이유에서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첫째는 아베에 대한 트럼프의 절대적 의존도. “북한과 대화는 안 된다. 무조건 압박이다”는 주장을 펴는 아베에게 트럼프는 연신 “난 신조의 말에 절대 동감!”이란 말을 거듭했다 한다. 또 하나는 트럼프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불신. 심한 표현(내가 직접 확인한 게 아니라 지면엔 옮기진 않겠다)까지 쓴 걸 보고 경악했다 한다. 트럼프의 격노에 “내가 잘 알아서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고 달래기도 했다 한다.
트럼프가 대화론을 펴는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고, “폭풍 전의 고요”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어떤 이는 “전략적 역할 분담”이라 하지만 백악관에 정통한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게 그 시점의 트럼프의 솔직한 생각이란 게다. 그리고 거기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바로 아베다. 경제는 ‘아메리카 퍼스트’, 북한 문제는 ‘재팬 퍼스트’(네이션지)다. 우린 그동안 아베를 ‘트럼프의 푸들’이라 조롱했다. 하지만 이미 아베는 트럼프의 파트너, 아니 조련사가 돼 버렸다.
트럼프의 다음달 초 한·중·일 순방 시 ‘일본은 3박, 한국은 1박’ 이야기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2박, 한국 1박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어찌됐건 트럼프의 ‘아베 밀어주기’의 남다름이 드러났다. 골프 라운드, 납치 피해자 가족 면담은 보너스다. 또 어떤 깜짝 이벤트가 나올지 모른다.
관건은 아베의 생각이 우리와 같은가 여부다. 아베가 얄미워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트럼프를 이끌어만 준다면 사실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근데 그렇지만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베는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대화엔 반대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이 김정은 정권의 존속, ‘최소한의’ 핵무기 묵인에 나서지 않을까 극도로 경계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군사행동이 낫다는 쪽이다. 문재인 정권의 대화노선에 어깃장을 놓고 때로는 이간질까지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일본의 국익이라면 우리가 뭐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설득도 안 하는 게 우리의 문제다.
소설가 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제목은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였다. 하지만 난 같은 날 같은 면에 실린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칼럼니스트의 ‘방북기’에 몸서리쳤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북한을 떠날 때 (전쟁 수개월 전인) 2002년 후세인의 이라크를 떠나며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전쟁은 예방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예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중국엔 트럼프와 대등히 맞설 협상력과 핵이란 안전장치가 있다. 일본엔 일본 몰래 미국이 딴짓 안 하도록 할 트럼프의 신뢰란 안전장치가 있다. 그럼 우리에겐 한반도 전쟁을 가로막을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가. 아니 우리에겐 과연 ‘우리 편’이라도 있는 것인가.
트럼프가 한국에 왔을 때 비무장지대(DMZ) 견학시키고 판에 박힌 연출을 할 게 아니다. 뭔가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안전장치를 만들어내거나, 확실한 우리 편으로 만드는 전기가 절실하다. 어찌 보면 마지막 기회다. 그렇게만 된다면 1박이면 또 어떤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중앙일보
트럼프가 대화론을 펴는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고, “폭풍 전의 고요”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어떤 이는 “전략적 역할 분담”이라 하지만 백악관에 정통한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게 그 시점의 트럼프의 솔직한 생각이란 게다. 그리고 거기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바로 아베다. 경제는 ‘아메리카 퍼스트’, 북한 문제는 ‘재팬 퍼스트’(네이션지)다. 우린 그동안 아베를 ‘트럼프의 푸들’이라 조롱했다. 하지만 이미 아베는 트럼프의 파트너, 아니 조련사가 돼 버렸다.
트럼프의 다음달 초 한·중·일 순방 시 ‘일본은 3박, 한국은 1박’ 이야기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2박, 한국 1박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어찌됐건 트럼프의 ‘아베 밀어주기’의 남다름이 드러났다. 골프 라운드, 납치 피해자 가족 면담은 보너스다. 또 어떤 깜짝 이벤트가 나올지 모른다.
관건은 아베의 생각이 우리와 같은가 여부다. 아베가 얄미워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트럼프를 이끌어만 준다면 사실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근데 그렇지만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베는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대화엔 반대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이 김정은 정권의 존속, ‘최소한의’ 핵무기 묵인에 나서지 않을까 극도로 경계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군사행동이 낫다는 쪽이다. 문재인 정권의 대화노선에 어깃장을 놓고 때로는 이간질까지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일본의 국익이라면 우리가 뭐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설득도 안 하는 게 우리의 문제다.
소설가 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제목은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였다. 하지만 난 같은 날 같은 면에 실린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칼럼니스트의 ‘방북기’에 몸서리쳤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북한을 떠날 때 (전쟁 수개월 전인) 2002년 후세인의 이라크를 떠나며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전쟁은 예방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예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중국엔 트럼프와 대등히 맞설 협상력과 핵이란 안전장치가 있다. 일본엔 일본 몰래 미국이 딴짓 안 하도록 할 트럼프의 신뢰란 안전장치가 있다. 그럼 우리에겐 한반도 전쟁을 가로막을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가. 아니 우리에겐 과연 ‘우리 편’이라도 있는 것인가.
트럼프가 한국에 왔을 때 비무장지대(DMZ) 견학시키고 판에 박힌 연출을 할 게 아니다. 뭔가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안전장치를 만들어내거나, 확실한 우리 편으로 만드는 전기가 절실하다. 어찌 보면 마지막 기회다. 그렇게만 된다면 1박이면 또 어떤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