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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경조사비가 7조2700억원에 달했다는 조사

오리지널마인드 2017. 12. 13. 08:54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에서 경조사비 상한선을 기존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는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김영란법은 유독 경조사비 상한액을 10만원으로 해 국민들 부담을 키웠다. 이 법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경조사 부조 봉투에 그 아래 금액을 집어넣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10만원 한도'라고 하자 10만원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된 것이다.

빠듯한 살림을 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10만원 경조사비'는 도를 넘는다. 지난해 우리 국민 경조사비가 7조2700억원에 달했다는 조사가 있다. 가구당 50만원이 넘는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청첩장과 부고장은 일종의 '세금 고지서' 비슷하게 여겨진다. 일단 받고 나면 돈을 안 내기 어렵다. 결혼식 많은 계절엔 비명이 나올 지경이라는 샐러리맨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식은 신랑 신부가 아니라 그 부모가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혼하는 자식을 단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수금 고지서처럼 청첩장을 돌린다. 그 청첩장을 받은 사람은 그 부모 때문에 부조금을 낸다. 장례식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업무상' '인간관계상'이라는 관행의 힘이 날이 갈수록 경조사 문화를 왜곡시키고 타락시키고 있다. 요즘엔 휴대전화 메시지로 청첩장을 보내고 거기에 계좌번호까지 적어 놓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 웨딩홀에 로맨스는 없고 비즈니스만 있다"고 꼬집고 있다.

5년 전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는 '작은 결혼식' 캠페인을 펼쳤다. 빚내 호화 결혼식 치르고 식장에서 현금이 오가는 결혼 문화를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부모의 노후까지 희생하는 큰 결혼식은 자식 부부의 행복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눈물과 불행을 낳았다. '작은 결혼식'에 많은 호응이 있었고 공직자, 정치인, 재계 인사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한 기업은 당시 사내 윤리 규범을 만들어 '이해 관계자에게 청첩장 돌리지 말고 5만원 이상 받지 말자'고 했지만 사문화돼 버렸다고 한다. 대기업과 하도급 기관 간 '경조사비 먹이사슬'은 여전하다. 이렇게 거래하듯 결혼과 장례를 치르는 나라는 없다. 법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다. 경조사비 거품부터 빼야 한다. 법 대상자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경조사비 5만원 상한을 지킬 필요가 있고 앞으로 더 줄여야 한다. 작은 결혼식, 경건한 장례식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