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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체결돼 2012년 발효된 한·미FTA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효자' 역할

오리지널마인드 2017. 11. 14. 08:42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거센 개정 압력을 받고 있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체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FTA 반대 진영이 노 대통령 지지층과 겹쳤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전직 경제 관료는 "우파 정부에서 한·미FTA 협상을 시작했다고 상상해봐라. 광화문광장이 촛불 시위대로 뒤덮여 정부가 협상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체결돼 2012년 발효된 한·미FTA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FTA 발효 전 2.57%였던 한국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016년 3.19%로 상승했고, 대미 상품수지 흑자는 같은 기간 116.4억달러에서 232.5억달러로 껑충 뛰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에 대해 "미국을 파괴로 몰고 갈 끔찍한 거래"라며 '폐기' 운운한 것도 결국은 미국이 손해 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국익을 위해 지지층의 반대를 정면 돌파했던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처럼 문재인 정부가 후대에 큰 업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정책은 뭘까. 전문가들은 '노동 개혁'을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문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본산인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노동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 덕분에 역대 대통령 누구보다 노동계와 잘 소통하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도 노동 개혁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공약으로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했고,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에 민주노총의 핵심 조직인 전국금속연맹 위원장 출신의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를 임명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문 대통령의 노동 개혁 구상은 출발부터 암초를 만났다. 민주노총이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 인사 초청 간담회에 당초 참석하겠다던 입장을 바꿔 불참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불참 이후 문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동정책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라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정부에서도 전체 노동자의 90%에 달하는 비조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킬 것인지 그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2%에 불과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제 공은 민주노총으로 넘어갔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는 63만여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4%밖에 안 된다. 게다가 조합원 대부분이 '노동계 기득권층'이라는 대기업 노조에 속해 있다. 3.4%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거부하느냐, 아니면 자신을 대변해줄 조직도 없는 90%의 비조직 노동자를 위해 대승적으로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것인가. 선택은 민주노총의 몫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