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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피 작전'을 반대했다고 알려진 '빅터 차'의 큰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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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5. 10:27
전남 강진(康津)은 물이 좋아서 역대로 부자가 많았다. 문필봉(文筆峰·붓의 끝모양처럼 뾰족한 산)도 좋은 게 많다. 동원참치와 아남산업 창업자의 고향이 여기이다. 물이 좋다는 것은 강물이 강진 전체를 감아 돌아 흐르기 때문이다. 직선으로 물이 나가면 별 재미가 없고 둥글게 감아 돌아 흐를 때 부자가 나온다.
월출산에서 흘러온 물은 작천면으로 빙 돌아 내려와서 병영으로 흘러간다. 병영의 물은 장흥 쪽에서 흘러온 여러 갈래 물과 합수(合水)가 된다. 이 풍광이 구강포(九江浦)이다. 만덕산 백련사(白蓮寺) 마당에서 바라보면 이 구강포의 풍광이 압권이었다. 구강포의 물은 강진읍 앞으로 와서 머물다가 다시 완도 쪽으로 내려간다.
왜정 때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윤길중(尹吉重·1916~2001)이 1941년에 강진군수로 부임하였다. 25세 새파란 청년이 군수로 부임하는 날 마중을 나간 강진의 원로들은 윤길중의 뻣뻣한 태도에 부아가 났다. 원로들과 상견례를 할 때 정중하게 인사를 하지 않고 고개만 약간 까딱했기 때문이다. 강진 원로들이 '그놈 호래자식이네' 하고 욕을 할 때, 원로 중의 하나인 차종채(車鍾彩)만큼은 '그래도 군수로 왔는데 그 정도 기백과 위엄은 있어야지' 하면서 윤길중을 좋게 보았다.
차종채는 '강진 호랑이' 소리를 듣던 압인지상(壓人之相)의 풍채와 위엄을 지닌 인물이었다. 25세짜리 군수가 왕따를 당하고 있을 때 차종채는 윤길중을 자기 집 사랑채에 불러서 식사 대접도 하고 용돈도 주고 바둑도 가르쳤다고 한다. 윤길중을 후원하였던 것이다. 10년 전쯤 필자와 같이 강진의 산세를 둘러보면서 강진의 풍수와 차종채를 이야기해줬던 김재휘(87) 선생은 청소년 시절 차종채를 길에서 만나면 거수경례를 붙이며 인사했던 추억을 말해주었다. 이 차종채가 미국의 '코피 작전'을 반대했다고 알려진 '빅터 차'의 큰할아버지이다. 연안(延安) 차씨(車氏)들이다. 빅터 차의 조부는 해방 이전에 강진에서 서울로 올라와 남양호텔을 경영했다.
월출산에서 흘러온 물은 작천면으로 빙 돌아 내려와서 병영으로 흘러간다. 병영의 물은 장흥 쪽에서 흘러온 여러 갈래 물과 합수(合水)가 된다. 이 풍광이 구강포(九江浦)이다. 만덕산 백련사(白蓮寺) 마당에서 바라보면 이 구강포의 풍광이 압권이었다. 구강포의 물은 강진읍 앞으로 와서 머물다가 다시 완도 쪽으로 내려간다.
왜정 때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윤길중(尹吉重·1916~2001)이 1941년에 강진군수로 부임하였다. 25세 새파란 청년이 군수로 부임하는 날 마중을 나간 강진의 원로들은 윤길중의 뻣뻣한 태도에 부아가 났다. 원로들과 상견례를 할 때 정중하게 인사를 하지 않고 고개만 약간 까딱했기 때문이다. 강진 원로들이 '그놈 호래자식이네' 하고 욕을 할 때, 원로 중의 하나인 차종채(車鍾彩)만큼은 '그래도 군수로 왔는데 그 정도 기백과 위엄은 있어야지' 하면서 윤길중을 좋게 보았다.
차종채는 '강진 호랑이' 소리를 듣던 압인지상(壓人之相)의 풍채와 위엄을 지닌 인물이었다. 25세짜리 군수가 왕따를 당하고 있을 때 차종채는 윤길중을 자기 집 사랑채에 불러서 식사 대접도 하고 용돈도 주고 바둑도 가르쳤다고 한다. 윤길중을 후원하였던 것이다. 10년 전쯤 필자와 같이 강진의 산세를 둘러보면서 강진의 풍수와 차종채를 이야기해줬던 김재휘(87) 선생은 청소년 시절 차종채를 길에서 만나면 거수경례를 붙이며 인사했던 추억을 말해주었다. 이 차종채가 미국의 '코피 작전'을 반대했다고 알려진 '빅터 차'의 큰할아버지이다. 연안(延安) 차씨(車氏)들이다. 빅터 차의 조부는 해방 이전에 강진에서 서울로 올라와 남양호텔을 경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