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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정기는 돌에 뭉쳐 있다

오리지널마인드 2017. 11. 20. 12:45
학교 다닐 때는 국·영·수가 중요하고, 나이 오십대 중반 넘어서는 음(音)·체(體)·미(美)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즐겁게 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즐겁게 해야 한다. 독락당(獨樂堂)에 거처해야 한다. 그러자면 음악, 체육, 미술이 필요한 것이다. 미술 가운데는 민화(民畵)가 무난한 것 같다. 보통 사람도 2~3년 배우면 집 안에 걸어 놓고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준이 된다. 선물하기에도 좋다. 민화를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고향의 마음을 느끼기 때문일까. 한민족의 무의식을 건드리기 때문일까.

전국 민화 인구가 15만~20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서울 인사동 필방과 표구상은 민화 인구가 먹여 살리고 있다. 민화 붐의 시작은 대갈(大喝) 조자용(1926~2000) 선생이다. 조자용의 가방을 들고 다니며 수발을 다한 제자가 윤열수(71)이다. 현재 가회민화박물관 관장이다. 오늘날 민화 붐을 일으킨 공로자이기도 하다. 필자가 민화에 대한 초보적 식견을 갖게 된 채널도 윤 관장이 펴낸 민화책을 통해서이다. 윤열수가 민화에 대한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면 조자용의 또 다른 제자인 송규태(83)는 민화를 잘 그리는 최고수이다. 이 두 사람으로부터 훈도를 받은 민화가가 정학진(62)인데, 이번에 서울 가회동 '가회민화박물관'에서 민화 전시회를 하고 있다. 정학진의 민화 가운데 '괴석화훼도'가 돋보인다. 커다란 괴석(怪石)을 붉은 꽃과 함께 그린 그림이다.

산의 정기는 돌에 뭉쳐 있다. 한자 문화권의 식자층은 산에 가지 못하고, 그 대신 돌의 정기를 집 안의 정원에서 전달받으려고 괴석을 좋아했다. 괴석 하나에 명산 하나가 통째로 응축되어 있다고 여겼다. 괴석 감상의 포인트는 '수추누투(瘦醜漏透)'에 있다. 마르고 못생기고 구멍이 있고, 구멍이 뻥 뚫린 것을 최고로 친다. 그동안의 민화에는 괴석을 이처럼 크게 전면에 내세운 구도가 없었는데, 정 작가의 '괴석화훼도'는 구멍이 뻥 뚫린 괴석을 그림 가운데에 대담하게 배치한 점이 이채로운 점이다. 돌은 씹어서 삼키기 어려운데, 작가는 이 단단한 돌을 위장에다 넣고 소화한 느낌이 든다. 민화라도 보면서 세월을 보내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