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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국민을 배려하고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취지로 크리스마스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라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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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5. 14:51
"미국 대통령으로서 마침내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말 백악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서 한 말이다. 40년 전 카터 행정부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국민을 배려하고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취지로 크리스마스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라 썼는데 그걸 이번에 뒤집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로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을 조롱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이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불편해할까.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9%가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여기고, 69%는 여전히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칼럼에서 '콜로라도주(州) 등을 관할하는 제10 연방순회법원의 지난 5년간 1만건의 소송을 분석한 결과 종교적 자유와 관련된 소송은 단 4건이었다'고 했다. 그나마도 토착 인디언들이 종교적 이유로 독수리 사냥 금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 등으로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었다.
사정이 이러니 '메리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 진보 세력이 보수에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경향은 워싱턴DC와 뉴욕, 캘리포니아 등 미국 민주당과 주로 진보 진영 강세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뉴욕 지하철은 지난달 '신사 숙녀 여러분'이란 안내 방송 문구를 '여러분' 혹은 '승객들'로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타고난 남녀가 아닌 제3의 성(性)을 가진 이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시애틀의 학교에서는 부활절 달걀도 '봄날의 공'으로 바꿔 부른다.
미국에서 세계화의 수혜를 많이 누린 곳일수록 진보가 우세하다. 2016년 기준 각 주의 1인당 연간 GDP(국내총생산) 순위를 보면 워싱턴DC는 무려 18만6000달러에 달한다. 워싱턴DC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압도적 세계 1위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뉴욕주의 1인당 총생산은 7만달러가 넘고 캘리포니아도 6만6000달러에 달한다. 반면 워싱턴DC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웨스트버지니아는 1인당 총생산이 4만달러에 불과하다. 미국 중·남부 주들도 3만~4만달러 정도다. 대부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지역들이다.
'해피 홀리데이스'란 표현은 풍요를 즐겨온 미국 진보 세력의 정신적 허영이란 지적도 있다. 워싱턴DC와 뉴욕은 세계의 중심지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시각만으로 미국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두 지역의 유수한 진보 언론들이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지만 트럼프는 많은 미국인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길 원한다는 걸 꿰뚫고 있었다. 올해 백악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은 '메리 크리스마스'의 반격이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