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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근간인 농지 문제는 내 삶과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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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4. 10:25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장엄을 느끼고 있다. 날아가는 새는 못 떨어뜨려도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려 감옥에는 넣을 수 있는 ‘공화국’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헌법은 국가 체제의 큰 밑그림이다. 지금 헌법은 1987년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법이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대선 정국과 함께 내각제냐 대통령 중임제냐라는 입에 잘 붙지도 않는 개헌 논의가 오간다. 개헌 논의가 나올 때마다 한 번씩 발로 툭툭 차는 헌법조항이 있다. 헌법 121조,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라는 ‘경자유전의 원칙’이다. 인사청문회장에서 장관 후보자나 정치인들이 불법으로 농지를 소유했다고 성토당할 때 저 원칙이 한 번씩 등장한다. 이런 경자유전의 원칙이 존폐의 기로에 있다. 어차피 농사를 지을 농민들은 늙었고 농촌도 텅텅 비어 가는데 농지 소유 자격을 완화해서 국토나 잘 활용하자는 것이다. 다양한 탈법으로 존재하는 ‘부재지주’의 실체도 인정하고 농지를 소유한 기업들의 소유권도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국회 개헌특위에서 경자유전 원칙을 삭제하자는 여론에 대한 의견을 농민단체들에 물어왔고 농민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1987년 헌법에 정식 명시되었지만 그 이전 헌법들도 농지는 농민, 즉 경자에 한해서만 소유할 수 있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있다. 제헌 당시 농민은 곧 국민이었고 대다수가 소작농 신세였다. 하여 소작제 폐지와 자작농 창설은 권력의 원천인 농민들이 열망한 국가의 밑그림이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에서도 경자유전의 원칙을 세우고 농지개혁을 단행했던 세계적 흐름이 있었던 데다 북한이 먼저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남한 정부도 농지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땅을 농민에게 주는 체제에 마음을 빼앗길지 모르는 ‘공산화’에 대한 우려로 남한 최고 땅부자이자 우파 한민당의 당수였던 김성수도 농지개혁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전·월세에 허덕대며 도시에 산다. 경자가 유전을 파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심지어 경자유전의 원칙과 관련한 판례 중 상당수는 농지법에 묶여 자신의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헌법소원이지 ‘경자유전 원칙’의 훼손 문제에 대한 헌법소원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음식은 땅에서 온다. 바다에서도 오지만 ‘바다농사’라는 말을 들어보면 어민들에게도 바다는 농지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정보로 먹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세상이지만 음식의 근간인 농지 문제는 내 삶과 멀기만 하다. 누가 농사를 짓든 그저 싸고 맛있고 양만 많으면 좋을 것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소작농이란 말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부재지주들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농민이 절반 이상이다. 강남이나 분당처럼 논밭 밀어내고 언젠가 한 방이 터지길 기다리는 부재지주들에게 농업직불금도 흘러들어가는 판이다. 그나마 힘없는 경자유전의 원칙마저 싹둑 잘라낸다면 우리의 밥은 어찌 될까. 공화국의 국민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이렇게 권력의 원천을 확인할 일이 생긴다. 그래서 몇 글자 되지 않는 명목상 원칙이어도 헌법에서 버텨야 하는 이유다. 경자유전 원칙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단 한번이라도 땅에 씨앗을 심고 거두어 보았느냐.
-경향신문<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경자유전의 원칙은 1987년 헌법에 정식 명시되었지만 그 이전 헌법들도 농지는 농민, 즉 경자에 한해서만 소유할 수 있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있다. 제헌 당시 농민은 곧 국민이었고 대다수가 소작농 신세였다. 하여 소작제 폐지와 자작농 창설은 권력의 원천인 농민들이 열망한 국가의 밑그림이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에서도 경자유전의 원칙을 세우고 농지개혁을 단행했던 세계적 흐름이 있었던 데다 북한이 먼저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남한 정부도 농지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땅을 농민에게 주는 체제에 마음을 빼앗길지 모르는 ‘공산화’에 대한 우려로 남한 최고 땅부자이자 우파 한민당의 당수였던 김성수도 농지개혁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전·월세에 허덕대며 도시에 산다. 경자가 유전을 파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심지어 경자유전의 원칙과 관련한 판례 중 상당수는 농지법에 묶여 자신의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헌법소원이지 ‘경자유전 원칙’의 훼손 문제에 대한 헌법소원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음식은 땅에서 온다. 바다에서도 오지만 ‘바다농사’라는 말을 들어보면 어민들에게도 바다는 농지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정보로 먹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세상이지만 음식의 근간인 농지 문제는 내 삶과 멀기만 하다. 누가 농사를 짓든 그저 싸고 맛있고 양만 많으면 좋을 것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소작농이란 말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부재지주들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농민이 절반 이상이다. 강남이나 분당처럼 논밭 밀어내고 언젠가 한 방이 터지길 기다리는 부재지주들에게 농업직불금도 흘러들어가는 판이다. 그나마 힘없는 경자유전의 원칙마저 싹둑 잘라낸다면 우리의 밥은 어찌 될까. 공화국의 국민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이렇게 권력의 원천을 확인할 일이 생긴다. 그래서 몇 글자 되지 않는 명목상 원칙이어도 헌법에서 버텨야 하는 이유다. 경자유전 원칙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단 한번이라도 땅에 씨앗을 심고 거두어 보았느냐.
-경향신문<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