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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를 어기거나 방해하면 대통령도 가차 없이 내쫓을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랜 법치(法治) 전통
오리지널마인드
2017. 6. 10. 09:33
살림의 여왕'으로 불렸던 미국의 마사 스튜어트가 2004년 징역 5개월을 선고받은 일이 있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이게 실형 선고 이유가 아니었다. 조사를 받다 관련자와 입을 맞춰 수사를 방해하고 조사관에게 허위진술한 게 문제였다. 우리는 법정 거짓말은 위증죄로 처벌하지만 수사기관에서 하는 거짓말은 방어권 차원에서 용인한다. 그러나 미국은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한 거짓말도 허위진술죄로 처벌한다. 묵비(默祕)는 봐주지만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허위진술죄를 포괄하는 개념이 미국의 사법방해죄다. 수사나 재판 절차를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사법방해'로 규정하고 중대 범죄로 처벌한다. 증거 인멸, 허위자료 제출, 증인 출석 방해 같은 행위가 다 포함된다. 사안에 따라 5년 또는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 원래 저지른 범죄보다 사법방해죄로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의 탄핵 사유는 도청(盜聽)이 아니라 도청 사건 수사를 방해한 사법방해죄였다. 사건 은폐를 지시하고 수사를 담당할 특별검사를 해임한 게 잘못이라는 이유였다. 빌 클린턴도 불륜 자체가 아니라 거짓 증언으로 사법절차를 방해한 것이 탄핵 사유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 인사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하다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상원 공개 증언을 하루 앞두고 서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수사 중단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임무 수행을 방해하는 구름을 걷어달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트럼프를 탄핵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핵폭탄급 증언이다. 미국에선 당장 이 행위가 사법방해죄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해고한 것만으로 사법방해"라는 주장과 "범죄에 해당될 정도는 아니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의회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탄핵 여부가 갈릴 것이다.
▶미국식 사법방해죄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대통령 여럿이 탄핵 대상이 됐을 것이다. 밉보인 사람은 먼지 털 듯 수사하고 예쁜 사람 봐주라고 검찰에 압력 넣는 행위가 모두 사법방해죄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겐 직권남용죄란 게 있긴 하지만 대통령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해 적용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의회가 직권남용만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절차를 어기거나 방해하면 대통령도 가차 없이 내쫓을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랜 법치(法治) 전통이 사법방해죄에 담겨 있다.
-조선일보-
▶이런 허위진술죄를 포괄하는 개념이 미국의 사법방해죄다. 수사나 재판 절차를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사법방해'로 규정하고 중대 범죄로 처벌한다. 증거 인멸, 허위자료 제출, 증인 출석 방해 같은 행위가 다 포함된다. 사안에 따라 5년 또는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 원래 저지른 범죄보다 사법방해죄로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의 탄핵 사유는 도청(盜聽)이 아니라 도청 사건 수사를 방해한 사법방해죄였다. 사건 은폐를 지시하고 수사를 담당할 특별검사를 해임한 게 잘못이라는 이유였다. 빌 클린턴도 불륜 자체가 아니라 거짓 증언으로 사법절차를 방해한 것이 탄핵 사유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 인사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하다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상원 공개 증언을 하루 앞두고 서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수사 중단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임무 수행을 방해하는 구름을 걷어달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트럼프를 탄핵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핵폭탄급 증언이다. 미국에선 당장 이 행위가 사법방해죄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해고한 것만으로 사법방해"라는 주장과 "범죄에 해당될 정도는 아니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의회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탄핵 여부가 갈릴 것이다.
▶미국식 사법방해죄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대통령 여럿이 탄핵 대상이 됐을 것이다. 밉보인 사람은 먼지 털 듯 수사하고 예쁜 사람 봐주라고 검찰에 압력 넣는 행위가 모두 사법방해죄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겐 직권남용죄란 게 있긴 하지만 대통령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해 적용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의회가 직권남용만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절차를 어기거나 방해하면 대통령도 가차 없이 내쫓을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랜 법치(法治) 전통이 사법방해죄에 담겨 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