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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은 원래 물리학이 신에게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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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5. 08:17
2010년 9월 3일 영국 주요 신문은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호킹이 신(神)은 없다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새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현대 물리학은 우주 창조에서 신을 위한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호킹은 우주가 무(無)에서 생겨났고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가 숱하게 많다고 썼다. 다윈이 진화론으로 생물학에서 창조주의 필요성을 지웠다면 호킹은 우주 전체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호킹은 원래 물리학이 신에게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1988년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에서 "완벽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그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호킹이 신의 존재를 부정했으니 전 세계 과학계와 종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여론조사에서 영국인의 80% 이상이 호킹의 말에 동의했다. 당대 최고 과학자의 영향력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호킹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건 그의 이론을 현재 기술로는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블랙홀과 우주 탄생의 기원이 된 '특이점(特異點)'에 대한 호킹의 이론을 일반인은 이해할 수 있을까. 출판계에 '호킹 지수'라는 지표가 있다. 전 세계에서 1000만권 이상 팔린 '시간의 역사'를 실제로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시간의 역사'의 호킹 지수는 6.6%이다. 100명 중 고작 6명만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뜻이다.
▶어제 호킹이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호킹 부고(訃告)는 그 어떤 부고보다 낯설었다. 온몸이 천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에 걸려 1~2년밖에 못 살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무려 55년을 더 살면서 물리학 역사를 새로 쓴 그였기 때문이다. 호킹은 생의 마지막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다. 호킹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인공지능의 위협과 지구온난화였다.
▶호킹은 갈릴레이 서거 300주년이던 1942년 태어나 아인슈타인 생일인 3월 14일에 떠났다. 물리학자가 될 운명이었던 것일까. 호킹을 불세출 과학자로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평생 괴롭힌 루게릭병이었다.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호킹은 3년간 1000시간을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하루 평균 한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발병 이후 닥친 죽음의 가능성에 직면하면서 그는 좋아하던 물리학을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리는 위대한 물리학자와 동시대를 사는 영광을 누렸다.
-조선일보-
▶호킹은 원래 물리학이 신에게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1988년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에서 "완벽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그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호킹이 신의 존재를 부정했으니 전 세계 과학계와 종교계가 발칵 뒤집혔다. 여론조사에서 영국인의 80% 이상이 호킹의 말에 동의했다. 당대 최고 과학자의 영향력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호킹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건 그의 이론을 현재 기술로는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블랙홀과 우주 탄생의 기원이 된 '특이점(特異點)'에 대한 호킹의 이론을 일반인은 이해할 수 있을까. 출판계에 '호킹 지수'라는 지표가 있다. 전 세계에서 1000만권 이상 팔린 '시간의 역사'를 실제로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시간의 역사'의 호킹 지수는 6.6%이다. 100명 중 고작 6명만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뜻이다.
▶어제 호킹이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호킹 부고(訃告)는 그 어떤 부고보다 낯설었다. 온몸이 천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에 걸려 1~2년밖에 못 살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무려 55년을 더 살면서 물리학 역사를 새로 쓴 그였기 때문이다. 호킹은 생의 마지막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다. 호킹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인공지능의 위협과 지구온난화였다.
▶호킹은 갈릴레이 서거 300주년이던 1942년 태어나 아인슈타인 생일인 3월 14일에 떠났다. 물리학자가 될 운명이었던 것일까. 호킹을 불세출 과학자로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평생 괴롭힌 루게릭병이었다.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호킹은 3년간 1000시간을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하루 평균 한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발병 이후 닥친 죽음의 가능성에 직면하면서 그는 좋아하던 물리학을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리는 위대한 물리학자와 동시대를 사는 영광을 누렸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