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배틀’을 하지 않고,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우며, 좀 더 친절하고 섬세하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환경과 어떤 제도나 문화의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좋은글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낄 때는 어떤 ‘문제’를 강하게 인지했을 때다. 나에게 분노나 스트레스를 안기는 문제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도대체 왜 그러는지, 도대체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탐구한 뒤 나름의 주장을 도출한다. 글 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안정을 취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어 ‘이득’이다. 공포스러운 것은 미지의 존재다. 보통은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게 되면, 일종의 전략과 전술을 도출해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두려움은 완화된다.
문제는,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 제기 글은 일종의 ‘고발’이나 폭로의 내용을 담을 때가 많다. 내 기준은, 고발의 대상이 힘 있는 단체이면 적시해도 무방하지만 개인의 경우에는(특히 공직자가 아닌 경우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굉장히 허약하고 가변적인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한 인간에게 그 전과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쯤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학습의 기회, 신체의 호르몬, 그날의 날씨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얼마든지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글을 쓸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학습과 성찰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욕망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조적 변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좋은 구조 속에 살 때 좋은 사람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행배틀’을 하지 않고,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우며, 좀 더 친절하고 섬세하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어떤 제도나 문화의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쓸 때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에 대한 상상을 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 시작점이 내 경험일 때가 많다는 점이 딜레마다. 따라서 개인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은 가급적 밝히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이전에 나의 부친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는데 그 글에서 부친의 얼굴과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부친이 곤란해지는 일도 없었다. 내 글을 읽은 내 부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내 기준을 다른 이에게도 마냥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겪은 것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이는 그런 ‘침착함’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고,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은 글은 정치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저격’ 글을 통하지 않고도 피해자가 적절한 보상으로 심신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고, 구조가 개선되며 가해자에게 변화의 계기가 제공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경향신문 아마추어 창작자-
문제는,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 제기 글은 일종의 ‘고발’이나 폭로의 내용을 담을 때가 많다. 내 기준은, 고발의 대상이 힘 있는 단체이면 적시해도 무방하지만 개인의 경우에는(특히 공직자가 아닌 경우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굉장히 허약하고 가변적인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한 인간에게 그 전과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쯤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학습의 기회, 신체의 호르몬, 그날의 날씨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얼마든지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글을 쓸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학습과 성찰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욕망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조적 변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좋은 구조 속에 살 때 좋은 사람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행배틀’을 하지 않고,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우며, 좀 더 친절하고 섬세하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어떤 제도나 문화의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쓸 때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에 대한 상상을 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 시작점이 내 경험일 때가 많다는 점이 딜레마다. 따라서 개인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은 가급적 밝히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이전에 나의 부친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는데 그 글에서 부친의 얼굴과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부친이 곤란해지는 일도 없었다. 내 글을 읽은 내 부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내 기준을 다른 이에게도 마냥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겪은 것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이는 그런 ‘침착함’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고,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은 글은 정치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저격’ 글을 통하지 않고도 피해자가 적절한 보상으로 심신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고, 구조가 개선되며 가해자에게 변화의 계기가 제공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경향신문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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