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 이 땅 강세를 약속받은 불교의 진표율사.
좋은글▣미륵불 이 땅 강세를 약속받은 불교의 진표율사.
지금부터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 때 진표율사(眞表律師)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 분은 도통을 받기 위해 어떤 독특한 구도 행각을 했냐 하면, 망할 망(亡) 자, 몸 신(身) 자, 망신참법(亡身懺法)이라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 시한을 정해 놓고 그 시간까지 손가락을 돌로 찧어서 다 으스러뜨리고, 자기 몸뚱이를 부수면서 팔도 끊고, 또 높은 바위에서 떨어져 몸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안 되니까 시한을 또 정해 놓고 그 때까지 견성(見性)이 안 되면 아주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 버리기로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건 대상이 딴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 미륵부처님에게 자기 소원을 들어 달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그렇게 온 생명을 다 바쳐 죽기를 각오하고 열정 적으로 도를 구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미륵부처님 이 도솔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내려 오셔서 진표에게 도통을 내려 주셨다. 진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구도에 정진하여, 앞으로 닥쳐올 천지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보고 지극정성으로 미륵부처님 ,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나라에 강세하시기를 빌었다.
이에 하나님이 진표를 보고, “네가 그렇게 정성이 지극할진대 네가 본 내 모습 이대로 불상을 받들어 세우겠느냐?” 고 다짐을 물으니, “예,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한다. 그러고서 세운 불상이 지금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金山寺) 미륵전의 미륵불상이다. 당시 동양에서 가장 큰33척의 미륵불을 세웠다.
헌데 그 미륵불상을 세운 자리가 원래 금산사 연못자리였다. 진표가 그 연못을 숯으로 메우고 그 자리에다가 미륵불상을 조성했고, 그때부터 미륵신앙이 시작되었다. 그 후 진표는 속리산 법주사에도 미륵불상을 세우고 금강산 발연사에도 세우고, 그렇게 미륵불상 셋을 세우고 죽었다.
진표라는 불자가 “미륵부처님, 이 땅에 꼭 와 주십시오!” 하고 생명을 다 바쳐 기도하고. 또한 천여 년 동안 수많은 중생들이 “미륵부처님, 이 땅에 꼭 와주십시오!” 하고 빌어 왔다. 그러니 상제님은 진표를 비롯한 민중들의 염원(念願)과 기도에 응하여 한반도에 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앉아 있는 좌불(坐佛)과 서 있는 입불(立佛)이 있다. 좌불은 지나간 세상의 부처를 상징해서 앉아있는 상으로 만들었고, 입불은 내세불(來世佛)로서 앞 세상에 장차 걸어온다는 의미에서 서있는 상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서 있는 부처가 미륵부처인 것이다.
불자들에게는 부처라는 말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세속의 하나님, 주님, 상제님을 그들은 부처라고 한다. 불자들은 부처 하나밖에 없다. 부처 지상주의다. 부처가 하나님이고, 부처가 아버지고, 하여튼 부처 하나밖에 없다. 상황이 그러하니 상제님이 불자인 진표에게 잠깐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진표율사가 미륵부처님께 도통을 받고 미륵불을 세운 기록(삼국유사)
釋眞表 完山州(今全州牧)萬頃縣人(或作豆乃山縣 或作那山縣 今萬頃 古名豆乃山縣也 貫寧傳釋□之鄕里 云金山縣人 以寺名及縣名混之也) 父曰眞乃末 母吉寶娘 姓井氏 年至十二歲 投金山寺崇濟法師講下 落彩請業 其師嘗謂曰 吾曾入唐 受業於善道三藏 然後入五臺 感文殊菩薩 現受五戒 表啓曰 勤修幾何得戒耶 濟曰 精至則不過一年 表聞師之言 遍遊名岳 止錫仙溪山不思議菴 該鍊三業 以亡身懺□□□ 初以七宵爲期 五輪撲石 膝腕俱碎 雨血嵓崖 若無聖應 決志捐捨 更期七日 二七日 終見地藏菩薩 現受淨戒............又懃勇如初 果感彌力 現授占察經兩卷(此經乃陳隋間外國所譯 非今始出也 慈氏以經授之耳) 竝證果簡子一百八十九介 謂曰 於中第八簡子喩新得妙戒 第九簡子喩增得具戒 斯二簡子是我手指骨 餘皆沈檀木造 喩諸煩惱 汝以此傳法於世 作濟人津筏 表旣受聖莂 來住金山 每歲開壇 恢張法施 壇席精嚴 末季未之有也 風化旣周 遊涉到阿瑟羅州 島嶼間魚鼇成橋 迎入水中 講法受戒 卽天寶十一載壬辰二月望日也 或本云元和六年 誤矣 元和在憲德王代(去聖德幾七十年矣) 景德王聞之 迎入宮闥 受菩薩戒 嚫租七萬七千石 椒庭列岳皆受戒品 施絹五百端 黃金五十兩 皆容受之 分施諸山 廣興佛事 其骨石今在鉢淵寺 卽爲海族演戒之地 得法之袖領 《삼국유사 진표전간》
•21일 공부를 마치던 날 천안(天眼)이 열리어 미륵불께서 수많은 도솔천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대광명 속에서 오시는 모습을 보니라.
미륵불께서 진표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시기를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계(戒)를 구하다니.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구해 참회하는구나. 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 수미산(須彌山)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다.” 하고 찬탄하시니라.
이 때 미륵불께서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 189개를 진표에게 내려 주시며 말씀하시기를“너는 이것으로써 법을 세상에 전하여 남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으라. 이 뒤에 너는 이 몸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도솔천에 태어나리라.” 하시고 하늘로 사라지시니라.
원각(圓覺) 대도통을 한 뒤, 닥쳐올 천지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본 진표 대성사(大聖師)는 온 우주의 구원의 부처이신 미륵천주께서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해 주실 것을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니 이로부터 ‘밑 없는 시루를 걸어 놓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4년에 걸쳐 금산사에 미륵전을 완공하니라.(도전1:7)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도전2:30)
☞당래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오는 미래의 미륵부처를 말함이다. 마땅히 미래에 오는 미륵부처님의 도법을 기리고 말씀한 게송이다.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표는 나와 큰 인연(大緣)이 있느니라.
‘육장금불(六丈金佛)이 화위전녀(化爲全女)라.’ 하였나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삼층전 미륵은 손바닥에 불(火)을 받았으나 나는 입에다 물었노라.(도전2:66)
지금부터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 때 진표율사(眞表律師)라는 승려가 있었다. 그 분은 도통을 받기 위해 어떤 독특한 구도 행각을 했냐 하면, 망할 망(亡) 자, 몸 신(身) 자, 망신참법(亡身懺法)이라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 시한을 정해 놓고 그 시간까지 손가락을 돌로 찧어서 다 으스러뜨리고, 자기 몸뚱이를 부수면서 팔도 끊고, 또 높은 바위에서 떨어져 몸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안 되니까 시한을 또 정해 놓고 그 때까지 견성(見性)이 안 되면 아주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 버리기로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건 대상이 딴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 미륵부처님에게 자기 소원을 들어 달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그렇게 온 생명을 다 바쳐 죽기를 각오하고 열정 적으로 도를 구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미륵부처님 이 도솔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내려 오셔서 진표에게 도통을 내려 주셨다. 진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구도에 정진하여, 앞으로 닥쳐올 천지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보고 지극정성으로 미륵부처님 ,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나라에 강세하시기를 빌었다.
이에 하나님이 진표를 보고, “네가 그렇게 정성이 지극할진대 네가 본 내 모습 이대로 불상을 받들어 세우겠느냐?” 고 다짐을 물으니, “예,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한다. 그러고서 세운 불상이 지금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金山寺) 미륵전의 미륵불상이다. 당시 동양에서 가장 큰33척의 미륵불을 세웠다.
헌데 그 미륵불상을 세운 자리가 원래 금산사 연못자리였다. 진표가 그 연못을 숯으로 메우고 그 자리에다가 미륵불상을 조성했고, 그때부터 미륵신앙이 시작되었다. 그 후 진표는 속리산 법주사에도 미륵불상을 세우고 금강산 발연사에도 세우고, 그렇게 미륵불상 셋을 세우고 죽었다.
진표라는 불자가 “미륵부처님, 이 땅에 꼭 와 주십시오!” 하고 생명을 다 바쳐 기도하고. 또한 천여 년 동안 수많은 중생들이 “미륵부처님, 이 땅에 꼭 와주십시오!” 하고 빌어 왔다. 그러니 상제님은 진표를 비롯한 민중들의 염원(念願)과 기도에 응하여 한반도에 오시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앉아 있는 좌불(坐佛)과 서 있는 입불(立佛)이 있다. 좌불은 지나간 세상의 부처를 상징해서 앉아있는 상으로 만들었고, 입불은 내세불(來世佛)로서 앞 세상에 장차 걸어온다는 의미에서 서있는 상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서 있는 부처가 미륵부처인 것이다.
불자들에게는 부처라는 말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세속의 하나님, 주님, 상제님을 그들은 부처라고 한다. 불자들은 부처 하나밖에 없다. 부처 지상주의다. 부처가 하나님이고, 부처가 아버지고, 하여튼 부처 하나밖에 없다. 상황이 그러하니 상제님이 불자인 진표에게 잠깐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진표율사가 미륵부처님께 도통을 받고 미륵불을 세운 기록(삼국유사)
釋眞表 完山州(今全州牧)萬頃縣人(或作豆乃山縣 或作那山縣 今萬頃 古名豆乃山縣也 貫寧傳釋□之鄕里 云金山縣人 以寺名及縣名混之也) 父曰眞乃末 母吉寶娘 姓井氏 年至十二歲 投金山寺崇濟法師講下 落彩請業 其師嘗謂曰 吾曾入唐 受業於善道三藏 然後入五臺 感文殊菩薩 現受五戒 表啓曰 勤修幾何得戒耶 濟曰 精至則不過一年 表聞師之言 遍遊名岳 止錫仙溪山不思議菴 該鍊三業 以亡身懺□□□ 初以七宵爲期 五輪撲石 膝腕俱碎 雨血嵓崖 若無聖應 決志捐捨 更期七日 二七日 終見地藏菩薩 現受淨戒............又懃勇如初 果感彌力 現授占察經兩卷(此經乃陳隋間外國所譯 非今始出也 慈氏以經授之耳) 竝證果簡子一百八十九介 謂曰 於中第八簡子喩新得妙戒 第九簡子喩增得具戒 斯二簡子是我手指骨 餘皆沈檀木造 喩諸煩惱 汝以此傳法於世 作濟人津筏 表旣受聖莂 來住金山 每歲開壇 恢張法施 壇席精嚴 末季未之有也 風化旣周 遊涉到阿瑟羅州 島嶼間魚鼇成橋 迎入水中 講法受戒 卽天寶十一載壬辰二月望日也 或本云元和六年 誤矣 元和在憲德王代(去聖德幾七十年矣) 景德王聞之 迎入宮闥 受菩薩戒 嚫租七萬七千石 椒庭列岳皆受戒品 施絹五百端 黃金五十兩 皆容受之 分施諸山 廣興佛事 其骨石今在鉢淵寺 卽爲海族演戒之地 得法之袖領 《삼국유사 진표전간》
•21일 공부를 마치던 날 천안(天眼)이 열리어 미륵불께서 수많은 도솔천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대광명 속에서 오시는 모습을 보니라.
미륵불께서 진표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시기를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계(戒)를 구하다니.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구해 참회하는구나. 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 수미산(須彌山)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다.” 하고 찬탄하시니라.
이 때 미륵불께서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 189개를 진표에게 내려 주시며 말씀하시기를“너는 이것으로써 법을 세상에 전하여 남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으라. 이 뒤에 너는 이 몸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도솔천에 태어나리라.” 하시고 하늘로 사라지시니라.
원각(圓覺) 대도통을 한 뒤, 닥쳐올 천지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본 진표 대성사(大聖師)는 온 우주의 구원의 부처이신 미륵천주께서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해 주실 것을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니 이로부터 ‘밑 없는 시루를 걸어 놓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4년에 걸쳐 금산사에 미륵전을 완공하니라.(도전1:7)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도전2:30)
☞당래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오는 미래의 미륵부처를 말함이다. 마땅히 미래에 오는 미륵부처님의 도법을 기리고 말씀한 게송이다.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표는 나와 큰 인연(大緣)이 있느니라.
‘육장금불(六丈金佛)이 화위전녀(化爲全女)라.’ 하였나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삼층전 미륵은 손바닥에 불(火)을 받았으나 나는 입에다 물었노라.(도전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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