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북한이 적이면서 동포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결국 ‘투 트랙’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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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포기하고 안보만 하려면 남북 대화나 교류·협력 대신 북한에 대한 군사적 방비만 철저히 하면 된다. 즉 군사적인 측면에만 집중하는 ‘외곬’ 정책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북한이 적이면서 동포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결국 ‘투 트랙’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평화 지키기’(peace keeping)를 하면서 동시에 ‘평화 만들기’(peace making)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행정부에 국방부와 통일부가 같이 있는 것이다.
북한을 ‘적’으로만 보는 ‘외곬’ 대북정책, 즉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우리의 최대 안보현안인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에 극명하게 입증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대북압박과 제재로 북한을 붕괴시키면 핵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통일까지 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남북관계를 단절시키고 북핵 6자회담 개최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 9년 동안 북한은 붕괴되지 않았고 핵능력만 고도화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초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임기 내내 안보를 이유로 대북압박만 강화하더니 결국 우리 국민들이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를 안보 위기 상황을 초래해놓고 떠났다.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엄청난 난제를 떠안고 출범했다.
한-미 공조는 북핵문제 해결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그런데 그동안 북핵 관련 한·미의 정책은 엇박자를 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국이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한국이 압박을 주문한 적도 있었다.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핵문제 해결 여건을 조성하려고 할 때 미국이 대북 압박을 시작함으로써 상황이 오히려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 초 불거진 북핵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북핵능력이 오히려 고도화된 데는 한·미 대북정책의 ‘미스매칭’(mismatching)이 되풀이된 탓도 크다.
그런데 최근 한·미가 대북정책의 미스매칭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짐이 보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초 미국에서 대북 선제타격론, 북한 정권교체론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한때 ‘한반도 4월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4월26일 트럼프 정부가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공식 발표했다. 대북 압박을 강하게 하되 압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정부가 투 트랙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새벽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강력한 대북경고를 하면서 ‘제재와 대화 병행’이라는 자신의 대북정책 기조를 공식 천명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위협에는 제재도 불사하지만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평화 지키기와 평화 만들기라는 투 트랙 정책으로 북한을 상대하면서 남북관계도 개선하고 북핵문제도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대선 준비 과정부터 투 트랙 대북정책 기조를 정립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트럼프 정부의 ‘압박과 관여’라는 투 트랙 대북정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북정책의 방향과 기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한-미 공조가 이전 정부들에 비해서 훨씬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 임기 중 북핵문제 해결이 상당히 진척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앞으로도 군사적 도발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 공조 여건은 나쁘지 않다. 문재인 외교안보팀은 출발부터 트럼프 정부와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의 큰 획을 긋기 바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병행’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외교력은 결국 남북관계에서 나온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