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삼성은 권력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돈을 건넸다고 하지만 특검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 경영권 승계 전반에 걸쳐 이 부회장이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좋은글2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수사에 재계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큰 부담”(경총)이라고 했다. “국내 최고 기업의 리더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상실감을 느낀다” “맥빠지는 결과”라는 말도 나온다. 재계의 이런 반응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정경유착 근절과 재계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 다수의 생각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뇌물·횡령 등 이 부회장의 혐의가 말해주듯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삼성과 권력 간 정경유착에 기인한 것이다. 삼성은 권력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돈을 건넸다고 하지만 특검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 경영권 승계 전반에 걸쳐 이 부회장이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3대째 경영세습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차례 불법 의혹이 제기됐지만 한번도 총수가 구속된 적이 없었다. 권력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이유로 문제를 덮어주고, 기득권 집단이 이를 비호해 온 결과였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추상같던 법이 삼성에만은 예외였던 셈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수사는 이 같은 비정상이 묵인해줄 수 있는 한계점에 다다랐고, 따라서 삼성도 법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삼성은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각에서 경영위기론이 나오는 모양이지만 이는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속으로 일시적 혼란은 있겠지만 경영 마비 운운하는 것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다. 그동안 총수 구속으로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거나 총수 석방으로 경제가 회생한 전례도 없다. 총수 유고로 삼성의 쇄신작업은 물론 인사·채용도 멈출 것이라는 얘기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부회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최순실 일당에 대한 지원이 이 부회장의 승인 아래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계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이미 특검 조사를 통해 몇몇 재벌들은 출연 등의 대가로 사면 또는 사업권을 획득했다는 물증과 진술들이 나온 터다. 이 부회장 구속수사는 총수들에 대한 과잉보호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뜯어고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재벌을 둘러싼 기득권 집단의 공고한 카르텔도 무너져야 한다.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국 경제도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