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헌이 종신제의 부활
좋은글중국 국가주석과 부주석 임기를 2회로 제한하는 현행 규정을 없애는 개헌안이 지난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찬성 2958, 반대 2, 기권 3, 무효 1표로 통과됐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됐지만, 이는 중국 일반 인민의 압도적 지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진핑 주석이 졸업한 칭화대 캠퍼스에는 ‘세계여성의 날’이던 지난 8일 학생들이 의미심장한 현수막을 붙였다. ‘사랑에는 기한(임기제한)이 없다. 만일 있다면 그것을 삭제하라.’ ‘나는 당신들의 남자친구로 연임하려 한다.’ 현수막은 임기 제한 폐기 개헌을 풍자한 것이다.
1989년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유혈 진압된 이후 정치적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던 대학생들이 여성의 날을 빌어 우회적으로 개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개헌은 누가 보더라도 내용과 절차 모두 무리한 개헌이었다.
지난 2월 25일 발표된 개헌안의 핵심은 네 가지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 사상 포함, 국가감찰위원회 설치,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2회 연임까지 가능) 폐지, 중국공산당 영도의 헌법 조문 명문화가 그것이다.
당의 지도 사상이 변경되면 그 내용을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관례였고, 국가감찰위원회의 설치는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 국가조직의 변동이라는 점에서 개헌은 당연했다. 그러나 국가주석과 부주석 임기 제한 폐지와 ‘중국공산당 영도’의 헌법 총강 명문화는 다른 문제다. 그것은 개혁·개방 이후 이루어진 중국 정치 개혁의 방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으로 개혁·개방 이후 종신제를 폐지하고 당과 정부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을 해왔다. 그 일환으로 1982년 개정된 헌법에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무를 빼고는 국가주석 등 모든 헌법상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중임제를 명문화했다. 문혁 시기인 1975년 헌법 총강에 포함됐던 ‘공산당 영도’를 삭제했다. 그래서 이번 개헌은 중국 정치 개혁에 역행할 뿐 아니라 심지어 문혁의 그림자까지 느껴진다.
개헌 과정도 무리하게 진행됐다. 앞서 네 차례 부분 개헌 때는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는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이번 개헌은 지난해 9월 29일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시진핑이 처음 제안했다. 이후 지난 1월 개헌안이 발표될 때까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국가 중대사인 개헌이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임기 제한 폐지를 포함한 개헌을 왜 그렇게 무리하게 추진했을까. 이번 개헌을 보면 시진핑의 임기 연장이라는 핵심적 이유 외에는 다른 중대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시진핑의 임기 연장은 권력집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시진핑의 권력집중은 집단지도체제가 가진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이와 관련해 후진타오 시기에 발생한 권력 분산으로 인한 문제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단계인 군대 개혁의 완수와 강대국으로의 발전을 위한 결정적 전환기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봤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고속 성장과 서구 민주주의에서 등장한 극우 민족주의도 개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서구의 절차적 민주의 한계는 오히려 중국적 제도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공산당 영도와 지도 핵심인 최고지도자로의 권력집중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부패 투쟁을 통한 권력집중과 19차 당 대회를 통한 시진핑으로의 권력집중이었다. 반부패 투쟁은 현직은 물론 원로 세력 중 시진핑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무력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위신을 높였다.
그렇다면 이번 개헌이 종신제의 부활일까. 시진핑은 임기를 몇 차례 연장하겠지만, 그것이 종신제 부활과 동의어는 아닌 듯하다. 비록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이 폐지됐지만, 정치적 필요와 건강이라는 두 가지 제약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예컨대 2003년 국가주석에서 물러난 장쩌민이 임기 제한 없는 중앙군사위 주석직에서 2004년 물러났다. 이는 시진핑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올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중국 인민은 이제는 마오쩌둥 시대의 신민(臣民)이 아니다.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사회는 성장했고 덩샤오핑의 정치 개혁 전통은 인민과 간부들에게 면면히 남아 있다.
칭화대 학생들의 현수막은 소수 지식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시진핑의 개헌이 개인 독재와 종신제 경향성을 갖게 된다면 지도체제의 장기적 안정화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초래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안치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중앙일보-
1989년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유혈 진압된 이후 정치적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던 대학생들이 여성의 날을 빌어 우회적으로 개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개헌은 누가 보더라도 내용과 절차 모두 무리한 개헌이었다.
지난 2월 25일 발표된 개헌안의 핵심은 네 가지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 사상 포함, 국가감찰위원회 설치,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2회 연임까지 가능) 폐지, 중국공산당 영도의 헌법 조문 명문화가 그것이다.
당의 지도 사상이 변경되면 그 내용을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관례였고, 국가감찰위원회의 설치는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 국가조직의 변동이라는 점에서 개헌은 당연했다. 그러나 국가주석과 부주석 임기 제한 폐지와 ‘중국공산당 영도’의 헌법 총강 명문화는 다른 문제다. 그것은 개혁·개방 이후 이루어진 중국 정치 개혁의 방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으로 개혁·개방 이후 종신제를 폐지하고 당과 정부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을 해왔다. 그 일환으로 1982년 개정된 헌법에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무를 빼고는 국가주석 등 모든 헌법상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중임제를 명문화했다. 문혁 시기인 1975년 헌법 총강에 포함됐던 ‘공산당 영도’를 삭제했다. 그래서 이번 개헌은 중국 정치 개혁에 역행할 뿐 아니라 심지어 문혁의 그림자까지 느껴진다.
개헌 과정도 무리하게 진행됐다. 앞서 네 차례 부분 개헌 때는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는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이번 개헌은 지난해 9월 29일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시진핑이 처음 제안했다. 이후 지난 1월 개헌안이 발표될 때까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국가 중대사인 개헌이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임기 제한 폐지를 포함한 개헌을 왜 그렇게 무리하게 추진했을까. 이번 개헌을 보면 시진핑의 임기 연장이라는 핵심적 이유 외에는 다른 중대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시진핑의 임기 연장은 권력집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시진핑의 권력집중은 집단지도체제가 가진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이와 관련해 후진타오 시기에 발생한 권력 분산으로 인한 문제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단계인 군대 개혁의 완수와 강대국으로의 발전을 위한 결정적 전환기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봤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고속 성장과 서구 민주주의에서 등장한 극우 민족주의도 개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서구의 절차적 민주의 한계는 오히려 중국적 제도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공산당 영도와 지도 핵심인 최고지도자로의 권력집중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부패 투쟁을 통한 권력집중과 19차 당 대회를 통한 시진핑으로의 권력집중이었다. 반부패 투쟁은 현직은 물론 원로 세력 중 시진핑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무력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위신을 높였다.
그렇다면 이번 개헌이 종신제의 부활일까. 시진핑은 임기를 몇 차례 연장하겠지만, 그것이 종신제 부활과 동의어는 아닌 듯하다. 비록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이 폐지됐지만, 정치적 필요와 건강이라는 두 가지 제약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예컨대 2003년 국가주석에서 물러난 장쩌민이 임기 제한 없는 중앙군사위 주석직에서 2004년 물러났다. 이는 시진핑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올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중국 인민은 이제는 마오쩌둥 시대의 신민(臣民)이 아니다.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사회는 성장했고 덩샤오핑의 정치 개혁 전통은 인민과 간부들에게 면면히 남아 있다.
칭화대 학생들의 현수막은 소수 지식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시진핑의 개헌이 개인 독재와 종신제 경향성을 갖게 된다면 지도체제의 장기적 안정화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초래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안치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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