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투자자가 언제 자기 계좌가 털릴지 모를 위험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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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코인체크'가 해킹 공격을 당해 580억엔(약 5648억원)어치 가상 화폐를 탈취당했다. 고객 26만명 계좌에 보관된 가상 화폐가 사라졌다. 약 4700억원을 도난당한 일본 마운트곡스 사건(2014년)이나 약 770억원 손실을 본 홍콩 비트피넥스 사건(2016년)을 뛰어넘는 최악의 사고다. 외신들은 가상 화폐가 해커들의 "신선한 먹잇감이 됐다"고 전했다. 가상 화폐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가상 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상 화폐를 사고파는 거래소는 일반 인터넷 쇼핑몰이나 마찬가지여서 해킹 공격에 취약하다. 이번 해킹 역시 일본 거래소의 부실한 보안 시스템이 원인이었다. 서버에 보관된 가상 화폐 정보를 인터넷과 분리하지 않고 연결해둔 채 방치했다. 인터넷 분리 운용이 기술적으로 어렵고 인력도 부족해 제대로 된 보안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곳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하며 가상 화폐 정책에서 앞서간다는 일본이 저 정도라면 한국 거래소들의 보안 실태가 어떤 수준인지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해에만 국내 거래소 3곳이 고객 계좌와 개인 정보 등을 해킹당했다. 국내 10위권 거래소는 가상 화폐의 17%를 탈취당해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국내법상 거래소는 통신판매 회사로 분류돼 신고만 하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다. 대부분 자본금이 수억원 정도인 소규모 회사여서 보안 시스템이나 거래 안전망을 제대로 갖출 형편이 못 된다. 적용되는 보안 규정도 없다. 해킹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간다. 고객 자산이 100% 보장되는 금융회사와 달리 가상 화폐 거래소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모든 투자자가 언제 자기 계좌가 털릴지 모를 위험에 놓여 있다. 가상 화폐는 하루에 20~30%씩 예사로 오르내리는 고(高)리스크 투자다. 이렇게 위험한 상품에 2030 청년들과 직장인, 주부, 심지어 고교생까지 몰려들고 있다. 이 위험성에 거래소 해킹 리스크까지 겹쳐져 있다. 가상 화폐의 가치 여부를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는 논란이 있다. 그 기반 기술이 유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취약한 상태를 놓아두면 아무래도 무슨 큰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