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소소하고 작은 일상에 다시 관심을 갖고, 마침내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세상

좋은글3

그렇게 낯선 생각에 빠진 줄리에타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건다. 누가 봐도 남루하고, 음울해 보이는 남자는 줄리에타에게 다가와 ‘말동무’가 되어 달라고 말한다. 말동무, 그러니까 남자는 책을 읽고, 창밖에 시선을 둘 정도라면 어떤 ‘생각’을 하는 여자라 여기고 말을 건 것이다. 그러나 줄리에타는 그 생각의 무게가 버거워, 대화를 거절하고 자리를 뜬다. 안타깝게도 그는 젊은 여성과의 대화를 끌어낼 만큼 매력적이지도 섹시하지도 않았던 셈이다.

그런데, 잠시 후 기차가 정차하고 만다. 뭔가 물컹한 물체가 기차의 바퀴에 감촉된다. 사람들은 창밖을 지나던 수사슴이 혹시나 기차에 치인 것은 아닐지 염려한다. 하지만 줄리에타의 예감은 좀 다르다. 그리고 그 나쁜 예감은 어긋나지 않는다. 줄리에타는 남자가 제안했던 대화를 거절했다는 사실에 큰 죄책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 죄책감이 살아 있는 그녀의 감각적 고민을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줄리에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이 살아 있는 자의 미미한 고민은 원작에 더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녀는 생리혈이 혹시나 치마에 묻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식당 칸에서 만난 남자의 성적 매력이 주는 불안한 긴장감에 더 집중한다. 죄책감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지만 한편 살아 있기에 죄책감보다는 에로스의 당김과 감각적 불편함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영화 <줄리에타>와 소설집 <떠남(런어웨이)>의 단편들은 작고, 미묘한 삶의 부분 부분들, 일상과 비일상의 아주 작은 틈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런 작은 틈들은 정치나 경제와 같은 큰 문제들이 제법 안정되었을 때, 비로소 그 발견이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을 돌아보자면, 특히 영화계에서는 이런 작고, 소소한 문제를 다루기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내에서 <줄리에타>를 보며 느꼈던 각성과 감동도 사실 그 희유함과 낯섦에서 기인했다. 그동안 우리는 늘 과감하고 과격한 선과 악의 대결에 더 집중해야 했고 또 그러기를 요구받았던 것이다.

세상이 좀 달라졌다. 달라진 세상이란 이렇듯 소소하고 작은 일상에 다시 관심을 갖고, 마치 기차를 탄 여행객처럼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다가, 마침내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세상이 아닐까? 우리가 너무 큰일들에 치이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삶의 균열들, 그런 균열들에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