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쿠르츠는 지중해 이민 통로를 막고, 난민 원호금을 끊으며, 5년 안 된 이민자에겐 연금도 없다고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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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논조로 정평 있는 프랑스 르몽드 신문도 흥분했다. 오스트리아 총선을 전하면서 최상급 형용사 범벅이다.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젊은 총리요, 유럽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일 뿐 아니라 세계 수준의 권력자 중에서도 가장 청년다운 인물,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탄생했단다. 쿠르츠는 이번 총선에서 이긴 중도 우파 국민당 대표다. 영국 BBC방송도 서른한 살 쿠르츠를 대뜸 '분더부치'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물 위를 걷는 남자'라는 뜻이다. 말처럼 그는 정치 기적을 일궈왔다.


▶쿠르츠는 쇤부른 궁전에서 가까운 마이틀링 마을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거기 산다. 스물셋에 청년국민당 위원장을 맡았고, 이태 뒤엔 잘 다니던 빈대학 법학과를 때려치운다. 정치에 올인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시의회에서 출발, 중앙 내무부 차관을 거친 다음 스물일곱에 외무장관 자리를 꿰찼다. 쿠르츠는 '세계에서 가장 어린 외상, 내각에서 가장 젊은 각료'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그를 철부지로 봤던 선배 정객들이 나가떨어진다.

▶쿠르츠는 외교 수장이 된 지 두 달 만에 안보리 다섯 상임이사국과 독일을 빈으로 오게 해 '이란 핵 합의'를 이끌어내는 마당을 연다. 빈에서 진행된 'P5+1' 협상이었다. 장관이 되고 1년 후 서른 나라 외상이 모여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는 빈 회의에서는 호스트가 됐다. 전쟁 위기로 치닫던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도 그가 부르면 왔다. 업적이 쌓인 쿠르츠는 지난 5월 당대회에서 98.7% 표를 얻어 당수에 등극한다.

▶총선 이슈는 시작도 끝도 '이민(移民)'이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몰려드는 난민 위기를 어떻게 깔끔하게 해결하느냐가 이슈였다. 쿠르츠는 지중해 이민 통로를 막고, 난민 원호금을 끊으며, 5년 안 된 이민자에겐 연금도 없다고 공약했다. 그러자 극우 자유당이 쿠르츠를 '협잡꾼'이라고 불렀다. 자기들이 다져온 공약을 쿠르츠가 훔쳐갔다는 것이다. 자유당은 이번 총선에서 3위를 했다. 욕을 퍼붓긴 했지만 두 당은 손잡을 가능성이 크다.


▶길모퉁이에서 모차르트가 숨 쉬고, 40년 만에 가봐도 버스 노선이 그대로이며, 어느 산굽이를 돌아도 달력 같은 풍광이 펼쳐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영세 중립국이자 한때의 세계적 제국.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는 우리 개헌 논의에도 등장한다. 앞으로도 기록을 깨기 힘들 젊은 지도자가 나왔다. 그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닮았다. 당을 중심에 놓지 않고 본인 자신을 중심으로 정치 에너지를 모은다. 극우당이 연정에 참여하는 이후를 이웃 나라들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