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과 피상을 벗어나 절대를 추구하고 불꽃 같은 인식욕에 자신을 봉헌하며, 하루하루 고투한 이 영혼의 투사
좋은글불과 서른한 살에 생을 마감한 전혜린(1934~1965)은 1960년대의 신화였다. 법학과 독문학을 공부한 교수이자 번역가인 그가 남긴 것은 번역서 몇 권, 일기장과 산문 몇 편이었으나, 평범과 피상을 벗어나 절대를 추구하고 불꽃 같은 인식욕에 자신을 봉헌하며, 하루하루 고투한 이 영혼의 투사(鬪士)는 죽은 뒤 신드롬을 일으켰다.
전혜린의 아버지는 29세에 일본 고등문관 시험 사법·행정 양과에 합격한 전봉덕이다. 이 변호사 아버지 덕분에 일제강점기에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다. 세 살 때 한글 책과 일어 책을 읽어내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1952년, 아버지의 권유로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내 한마디는 아버지에겐 지상명령이었고, 나는 또 젊고 아름다웠던, 남들이 천재라 불렀던 아버지를, 그리고 나를 무제한하게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무조건 옹호한 아버지를 신처럼 숭배했다."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전혜린은 21세에서 25세까지 만 4년간 독일 뮌헨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전혜린은 검정 옷 애호가로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검정에 몰두했다. 1959년 서울 거리에서 그의 외모는 단연 눈에 띄었다. 검정 원피스에 검정 스웨터, 그리고 검정 머플러를 두른 채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그는 요즘 말로 검은색 '덕후'였다. 검정은 평범을 미워하고 고독을 비범한 자의 전유물로 여긴 그의 무의식적 욕망과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전혜린은 줄기차게 고독을 추구했다. 고독의 성채를 쌓고 그 안에서 점성술과 운명학을 연구하고 점을 쳤다. 그는 일기장에 "일생에 한 번, 한 개라도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그것을 위해 살아나간다" "나의 소망의 직업이 있다면 역시 쓰고 싶은 것뿐!" 같은 메모도 남겼다. 1965년 1월 10일 아침, 전혜린은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수면제 과용이었다. 자살 미수가 있었으니 자살일 수도 있었다. "무섭게 깊은 사랑, 심장이 터질 듯한 환희"를 추구한 그는 '장 아제베도'라고만 알려진 이에게 "내가 원소로 환원되지 않도록 도와줘! 너의 도움이 필요해"라는 마지막 편지를 쓰고 세상과 작별했다.
-조선일보-
전혜린의 아버지는 29세에 일본 고등문관 시험 사법·행정 양과에 합격한 전봉덕이다. 이 변호사 아버지 덕분에 일제강점기에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다. 세 살 때 한글 책과 일어 책을 읽어내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1952년, 아버지의 권유로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내 한마디는 아버지에겐 지상명령이었고, 나는 또 젊고 아름다웠던, 남들이 천재라 불렀던 아버지를, 그리고 나를 무제한하게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무조건 옹호한 아버지를 신처럼 숭배했다."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전혜린은 21세에서 25세까지 만 4년간 독일 뮌헨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전혜린은 검정 옷 애호가로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검정에 몰두했다. 1959년 서울 거리에서 그의 외모는 단연 눈에 띄었다. 검정 원피스에 검정 스웨터, 그리고 검정 머플러를 두른 채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그는 요즘 말로 검은색 '덕후'였다. 검정은 평범을 미워하고 고독을 비범한 자의 전유물로 여긴 그의 무의식적 욕망과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전혜린은 줄기차게 고독을 추구했다. 고독의 성채를 쌓고 그 안에서 점성술과 운명학을 연구하고 점을 쳤다. 그는 일기장에 "일생에 한 번, 한 개라도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그것을 위해 살아나간다" "나의 소망의 직업이 있다면 역시 쓰고 싶은 것뿐!" 같은 메모도 남겼다. 1965년 1월 10일 아침, 전혜린은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수면제 과용이었다. 자살 미수가 있었으니 자살일 수도 있었다. "무섭게 깊은 사랑, 심장이 터질 듯한 환희"를 추구한 그는 '장 아제베도'라고만 알려진 이에게 "내가 원소로 환원되지 않도록 도와줘! 너의 도움이 필요해"라는 마지막 편지를 쓰고 세상과 작별했다.
-조선일보-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의 존재이유 (0) | 2017.11.04 |
---|---|
한국이 선진국 전유물이었던 동계 올림픽을 연다 (0) | 2017.11.03 |
전쟁에서 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不戰勝) 전략이다. 현행 한·미 공동 지휘 체제는 그 부전승 전략 요체 중의 요체 (0) | 2017.11.01 |
미래사령부(현 미래연합군사령부) 사령관을 한국군 대장이, 부사령관을 미군 대장이 맡기로 한·미 간에 합의한 것 (0) | 2017.10.31 |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주권을 난폭하게 침해한 중국에 사과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0) | 2017.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