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 전유물이었던 동계 올림픽을 연다
좋은글한국 스키 역사에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일화들이 넘친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활강종목에 국가대표로 혼자 출전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스타트지점까지 올라갔다가 어쩐 일인지 그냥 내려왔다. "국가대표 허승욱이 가파른 활강 경기장을 보고 무서워서 경기를 포기했다…"는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혀를 찼다. 훗날 허승욱은 "랭킹 500위 이내만 출전하도록 규정이 바뀐 것을 우리만 몰랐다. 자격이 없는 데 나간 것이다. 나라 망신이 될까 봐 내가 무서워서 포기한 걸로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제 평창올림픽 성화 주자 중에는 '대한민국 스키 국가대표 1호'인 여든일곱의 임경순 단국대 명예교수도 있었다. "늙은 선배도 이렇게 뛴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인천 대교를 200m 가까이 달렸다. 중국에서 머물다 광복 직전 귀국한 그는 대한민국의 스키 1세대였다. 일제강점기 때 누군가 쓰다 버린 벚나무 스키에 남대문 시장에서 팔던 군인용 잠바를 입었다. 스키 타러 가던 곳이 눈 많은 평창이었다. 잠자던 곳에서 1시간을 걸어 산에 오르면 스키를 타기도 전에 기진맥진했다.

▶임 교수는 1960년 미국 스쿼밸리 올림픽에 한국 스키 대표로 처음 출전했다. 아내 반지 팔아 마련한 스키화에 현지에서 미국 대표팀 총감독 도움으로 구한 새 스키를 타고 경기에 나섰다. "한국 스키장이 '남산 코스'였다면 올림픽은 '백두산 코스'였다"고 했다. 당시 속도 제어에 자신이 없어 스키에 대못 박고 훈련하는 선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국내 스키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동계 올림픽 유치와 함께 한국 스키는 '천지개벽'을 맞이했다.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스키 점프 센터, 휘닉스 스노보드 경기장, 정선·용평의 알파인 스키 경기장 등 국제 인증을 받은 경기장들이 올림픽을 기다린다. 이제 한국 스키 대표팀에는 6개 종목 50명이 있을 만큼 두꺼워졌다. 유럽 알프스와 뉴질랜드가 단골 전훈지가 됐다. 한국은 동계올림픽의 '반쪽 강국'이었다. 쇼트트랙 등 빙상 종목에서만 메달이 나왔다. 그 아쉬움을 풀 가능성도 있다. 스노보드 이상호는 월드컵 준우승까지 해보았다.
▶요즘 평창에 가면 곳곳에서 윤이 난다. 옛날 화전(火田)의 땅,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였던 곳이 하루가 다르게 '올림픽 도시'가 돼가고 있다. 남이 버린 벚나무 스키 주워 신고 산비탈 미끄러져 내리던 한국이 선진국 전유물이었던 동계 올림픽을 연다. 우리가 빚어낸 이 기적의 잔치를 우리가 썰렁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
▶그제 평창올림픽 성화 주자 중에는 '대한민국 스키 국가대표 1호'인 여든일곱의 임경순 단국대 명예교수도 있었다. "늙은 선배도 이렇게 뛴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인천 대교를 200m 가까이 달렸다. 중국에서 머물다 광복 직전 귀국한 그는 대한민국의 스키 1세대였다. 일제강점기 때 누군가 쓰다 버린 벚나무 스키에 남대문 시장에서 팔던 군인용 잠바를 입었다. 스키 타러 가던 곳이 눈 많은 평창이었다. 잠자던 곳에서 1시간을 걸어 산에 오르면 스키를 타기도 전에 기진맥진했다.

▶임 교수는 1960년 미국 스쿼밸리 올림픽에 한국 스키 대표로 처음 출전했다. 아내 반지 팔아 마련한 스키화에 현지에서 미국 대표팀 총감독 도움으로 구한 새 스키를 타고 경기에 나섰다. "한국 스키장이 '남산 코스'였다면 올림픽은 '백두산 코스'였다"고 했다. 당시 속도 제어에 자신이 없어 스키에 대못 박고 훈련하는 선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국내 스키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동계 올림픽 유치와 함께 한국 스키는 '천지개벽'을 맞이했다.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스키 점프 센터, 휘닉스 스노보드 경기장, 정선·용평의 알파인 스키 경기장 등 국제 인증을 받은 경기장들이 올림픽을 기다린다. 이제 한국 스키 대표팀에는 6개 종목 50명이 있을 만큼 두꺼워졌다. 유럽 알프스와 뉴질랜드가 단골 전훈지가 됐다. 한국은 동계올림픽의 '반쪽 강국'이었다. 쇼트트랙 등 빙상 종목에서만 메달이 나왔다. 그 아쉬움을 풀 가능성도 있다. 스노보드 이상호는 월드컵 준우승까지 해보았다.
▶요즘 평창에 가면 곳곳에서 윤이 난다. 옛날 화전(火田)의 땅,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였던 곳이 하루가 다르게 '올림픽 도시'가 돼가고 있다. 남이 버린 벚나무 스키 주워 신고 산비탈 미끄러져 내리던 한국이 선진국 전유물이었던 동계 올림픽을 연다. 우리가 빚어낸 이 기적의 잔치를 우리가 썰렁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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