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교육부 올해 예산이 68조원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쓰면서 공교육은 뭘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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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16일과 17일, 31세 스타 강사 H씨가 부산과 대구에 떴다. 대형 콘서트홀을 메운 학생들 앞에서 그야말로 공연하듯 수학 강의를 했다. 4부에 걸쳐 진행된 행사에서 H강사는 기출 문제를 분석하고 출제 경향을 예상한 후 수험생 고민 상담과 격려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엔 참석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학습플래너에 친필 사인을 해주는 순서도 있었다. 콘서트는 사전 예약 3일 만에 전석이 마감됐다고 한다. 

▶H 강사가 서울 강남의 300억대 빌딩을 구입했다고 해서 화제다. 그는 강남에 또 하나의 빌딩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인 그는 수강생의 집중도를 유지시켜 가는 강의법으로 평가받는다. 딱딱한 수학 강의를 풍부한 유머와 비유를 섞어 끌어간다는 것이다. 외모도 훤칠하다. 몇 년 전부터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사로잡은 그는 수험생들에겐 아이돌 스타나 다름없다. 


▶과거엔 좁은 의자에 수백 명이 걸터앉아 잘 돌아가지도 않는 선풍기 밑에서 공부하던 것이 학원 강의실 풍경이었다. 수강생은 많아야 수백 명 정도. 2000년대 초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면서 강의 풍경과 내용이 확 바뀌었다. 강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가르칠 수도 있게 됐다. 그러면서 1년에 100억원 이상씩 번다는 이른바 '1타 강사'들이 생겨났다. 야구의 1번 타자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1타 강사'를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강의 능력에 따라 돈을 받는다. 수강생의 성적이 안 좋으면 강사는 해고되거나 정직에 처해진다." 한국 사교육은 강의에 가격을 매기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유능하면 돈 벌고 실력 없으면 도태된다. 학교 교육에선 상상할 수 없는 성과주의가 적용된다. 

▶스타 강사들은 전속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두고 있다. 시즌마다 성형수술 받기도 하고 꼭 명품 옷을 입고 나오는 강사도 있다. 만화 공주 주인공 의상을 입고 강단에 서기도 한다. 학생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해서일 것이다. 이들한테는 교재 연구, 강의 보조 등을 하는 전속 스태프들도 딸린다. 그렇게 해서 한 해 수십억,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스타 강사는 한 명 한 명이 각각의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이다. 교육부 올해 예산이 68조원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쓰면서 공교육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