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새벽이슬에 젖은 버선발의 짧은 행보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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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생과 잡담을 나눈 건 벚꽃 날리던 인수봉 아래 밥집에서다. 돌솥에 담겨나온 곤드레밥에 그는 청국장, 나는 담북장을 얹어 비벼 먹었다. 앵두색 스웨터를 입은 안주인은 밥에 딸려나온 산채를 가리키며 요건 상춧대, 요건 취나물, 요건 목이버섯이라 일러줬다. 아마씨를 밥 위에 솔솔 뿌려주면서는 천혜의 보약이라 호들갑을 떨었다.

오 선생 모친 이야기가 나온 건 돌솥에 불린 숭늉을 들이마실 때다. "갓 지은 밥 먹으니 어머니 생각 간절하네요." 그러고 보니 오 선생이 지극한 효자였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한데 그리운 사연이 엉뚱했다. "신여성이었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바쁜 세상에 밥은 무슨 밥이냐며 매일 아침 빵을 주셨어요. 눈뜨면 어머니는 이미 나가고 안 계시고, 4남매는 식빵을 우걱우걱 씹으며 등교했지요."

좋은 건 죄다 어머니 차지였다고도 했다. "당시 귀했던 오렌지가 선물로 들어오면 숨겨놓고 몰래 드셨어요. 참외를 깎을 때도 단맛 나는 위쪽은 당신이 먼저 잘라 드시고 나머지를 깎아 자식들 주시고요. 그러곤 말씀하셨죠. 너흰 살 날이 깃털처럼 많지 않니? 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앞길 창창한 너희는 나중에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이건 내가 먹으마."

6개월 집을 비우고 유럽 여행도 다녀왔다고 해서 입안의 숭늉이 튀어나올 뻔했다. 맏이가 고3, 막내가 중학 시험을 앞둔 때였다. "요즘 엄마들 상식으로도 이해 불가죠. 대한민국 어느 어머니가 애 넷을 남편한테 떠맡기고 여행을 가겠어요."

어머니는 언제고 바깥일로 바빴다. 고지식한 남편의 동네 병원 수입으로는 학교를 세워보겠다는 당신의 원대한 야망을 이룰 수 없으니 직접 생활 전선에 나섰다. "복덕방도 하고, 주식도 하셨어요. 황해도 개성 여인 아니랄까 봐 짬나면 화투라도 쳐서 돈을 따야 직성이 풀릴 만큼 셈 밝고 욕심 많고 바지런한 여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조선에서 여인으로 태어난 걸 가장 한스러워했다고도 했다. "'난 이름 가진 날이 싫다. 설날도 싫고, 추석도 싫고, 남편·자식 생일도 다 싫다' 푸념하셨지요. 내가 망나니짓하고 다니니 '야 이눔아, 아들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왜 그리 허투루 사느냐' 호통치시던 기억이 선합니다."

유별난 어머니가 원망스럽지 않으냐 물으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못 당한다'가 어머니 신념이었어요. 사랑과 희생만이 부모의 덕목일까요. 영욕의 삶, 격동의 시대를 치열하게 헤쳐나간 그녀의 투지가 철없는 아들을 사람 되게 하셨지요."


오 선생 모친은 한국 자수계 거목 박을복이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전시관에서 막 내린 '신여성 도착하다'전(展)에서 관람객들이 "피카소 같다"며 환호한 자수 작품이 그의 것이다. 이화여전에 다니다 동경여자미술대학에서 유학했으나 박을복은 삶과 예술 모두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자식들 떼놓고 6개월간 돌아본 '구라파'는 그의 예술 세계를 180도 변화시켰다. 동양 자수에 서양화풍을 접목했고, 김기창·박래현·장운성 같은 회화작가들과 협업하며 독창적인 자수 미학을 개척했다. 황창배의 화투 그림에 수를 놓아 제작한 열두 폭 화투 병풍, 이경성의 인물 드로잉에 머리카락을 심어 수놓은 '보고 싶은 얼굴'엔 위트와 해학이 넘친다. 말년에 완성한 '집으로 가는 길'은 박을복 자수의 결정판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초가삼간 찾아가는 여정이 애틋하지요. 길 끝 저 작은 집이 남편과 자식들 기다리는 집인지, 당신이 닿으려 했던 꿈의 집인지 모르지만, 이 작품을 볼 때면 가부장 통념과 악착같이 싸우고 타협하면서 승리를 거머쥐려 했던 한 여인의 분투가 느껴져 매번 눈물이 납니다."

여든이 넘도록 바늘과 씨름했던 박을복은 중풍으로 쓰러져 100세에 눈을 감았다. "마흔 넘어 장가가겠다고 하니 뭐 하는 사람이냐 물어요. 미국서 박사학위 받고 온 수재라고 했더니 '너도 참 여자 복이 없다' 하시대요. 미안하셨던 거예요. 살뜰히 돌봐주지 못한 자식들에게, 그래서 결국 당신 곁을 떠난 아버지에게."

박을복은 서울 우이동 산자락에 작은 박물관을 남겼다. 김기창이 "바늘 끝에 아로새겨진 오색의 아름다움이여"라고 예찬한 걸작들이 거기 있다. 아낙네들 고된 노동이던 바느질을 예술로 승화하고 떠난 그는 단 한 줄로 자신의 소망을 적었다. '새벽이슬에 젖은 버선발의 짧은 행보가 있었다고 어여삐 여겨주시기 바란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