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대통령의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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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들의 취재 스타일은 극성스럽다. ‘총리의 하루’ 역시 총리관저 출입기자들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수집한 정보를 기초로 작성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총리 측의 협조 없이 이처럼 구체적인 일정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극비 일정 몇 개를 빼고는 국민들에게 24시간 감시당하는 걸 감수하겠다는 총리의 공직 의식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 일본 기자들은 총리 관저 1층 로비에서 아베 총리가 출입할 때마다 질문공세를 편다. 하지만 2002년 현재의 총리 관저 건물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1층 로비뿐 아니라 집무실 바로 앞 복도까지 기자들이 진을 쳤다. 그래서 과거의 ‘수상 동정’엔 단순 일정뿐 아니라 총리와 기자들의 대화까지 담겼다. 우리로 치면 청와대 본관 2층의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에서 이뤄지는 대통령과 기자들의 대화다.

만약 우리에게도 이런 보도가 있었다면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집무실에 안 나올 수 있었을까. ‘대통령 동정’란에 ‘계속 관저, 오후 3시22분 미용담당 정송주·정매주 자매 입실, 오후 4시37분 두 사람 퇴실,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이후 관저’(청와대 주장 기준)로 보도되는 걸 감수할 수 있었을까. ‘세월호 참사 당일 출근도 안 했다’는 비판에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체제”라고 항변하는 청와대의 태도가 황당하다 못해 이제 딱하기까지 하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