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생존 배낭'이 올해 추석 선물로 등장

좋은글
미국 해병대원이 지급받는 물품 중에 '서바이벌 키트(survival kit·생존 장비)'라는 게 있다. 줄톱·낚싯바늘·다용도칼·나침반·성냥 등 20여개 품목이 들어 있는 주머니다. 전투 중 적진에서 낙오할 경우 구출될 때까지 버티거나 혼자서 살아 돌아오는 데 필수적인 것들이다. 해병대원들의 목숨을 지켜줄 마지막 무기인 셈이다. 이런 '생존 배낭'이 올해 추석 선물로 등장했다. 한 해운업체가 직원들에게 전투식량·방독면·안전모·라디오·휴대용랜턴 같은 것들이 들어간 배낭을 선물했다고 한다. 지진 같은 것도 염두에 둔 다목적 재난 대비용이라지만 북핵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이라 예사롭지 않다.


▶생존 배낭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들도 대목이다. 배송이 밀려 지금 주문해도 추석 후에야 배달된다고 한다. '설마'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혹시' 하게 된 것일까. 일본에서 수입됐다는 방화·방수 배낭까지 등장했다. 시중의 생존 가방은 4만~5만원대부터 30만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내용물도 생수·전투식량 등 비상식량, 손전등·나침반·라디오·호루라기·다용도칼·담요·우의·수건·보온모자·마스크·비상의약품·라이터·야광봉 등 줄잡아 30여개에 달한다.


 



▶낯선 것들도 적지 않다. 연필깎이처럼 손잡이를 돌리면 자가발전을 해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가 인기 아이템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런 수동식 라디오까지는 아니라도 휴대용 라디오 판매는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스마트폰은 적이 핵EMP(전자기파) 공격을 해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전투식량은 '알파미(米)'라는 쌀을 사용한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된다.


▶생존 배낭은 버그아웃 백(Bug-out bag·탈출 가방), 고 백(Go bag·피난 가방) 등으로 불린다. '72시간 가방'이라는 별명도 있다. 행정안전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따르면 생존 가방은 최소 72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전기와 수도 등이 차단된 채 고립된 지역에 정부가 구호품을 배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일 정도라서다. 하지만 핵전쟁을 염두에 둔다면 좀 더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조언이다. 핵무기 투하 후 지상의 방사능 농도가 옅어질 때까지 길게는 14일간 대피소에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추석 선물은 세태를 반영한다. 호경기에는 갈비·굴비·과일 세트들이 늘어나고, 불경기에는 햄·멸치·식용유·김세트 등이 유행했다. 변하지 않는 건 감사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생존 배낭이 추석 선물로 등장한 것을 보면 감사보다는 안전을 주고받아야 하는 시절이 온 모양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