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정동칼럼]미세먼지 같은 혐오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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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 난민 여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만나서 커피숍까지 걸어가는 동안 검은 베일을 쓴 그 여성에게 내리꽂혔던 시선을 잊을 수 없다. 곁눈질로 힐끔거리다 돌아서 빤히 쳐다보는 사람, 무섭거나 불결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멀찌감치 걸어가는 사람. 노골적이고 혐오적인 행동은 함께 있었던 필자마저도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

[정동칼럼]미세먼지 같은 혐오와 차별에 맞서기
최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용상씨의 외출>은 자폐성 장애인 용상씨가 일상적으로 겪는 혐오를 포착한 영화다. 엄마와 함께 외출한 용상씨는 지하철 안에서 반복적으로 몸을 흔들거나 노선도를 큰소리로 읽는다. 불안감을 줄이고 싶지만 감각 조절이 잘 안되는 데서 비롯된 행동이다. 이런 용상씨에게 돌아온 주변 승객들의 반응은 “에잇, 쯧” “집구석에나 있지 뭣 하러 나왔노!”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세상이다. 대기 중의 미세먼지처럼 우리를 둘러싼 혐오와 차별은 일상의 존엄을 위협하고 사회 구성원을 분열시킨다. 최근 조사연구를 보면 혐오와 그로 인한 차별은 노골적이고 적대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가볍게 희화화하거나 미묘하게 구획 짓고 배제함으로써 ‘문제없음’이라는 착시효과에 숨은 것도 많다.

영화 속의 용상씨가 부딪히게 될 현실은 가파른 비탈길처럼 힘겹고 위험하기조차 하다. 한 발달 장애인 학생은 “투명인간처럼 취급해 말을 걸어도 친구들이 답을 안 하고, 때론 이유 없이 욕을 듣거나 맞아서 뼈가 부러지기도 한다”고 했다. 어느 여성 장애인은 “어렸을 적 엄마나 주변 사람들이 ‘전생의 업보’라며 한숨을 쉴 때면 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혀 삶이 형극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주민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더 노골적이고 적대적이어서 털이 곤두설 만큼 두렵고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프다. “한국여성이 왜 하필이면 시꺼먼 외국인, 이슬람권 외국인과 사귀느냐”라든지, 버스에서 이주민 옆에 앉은 여성에게 어느 한국인 남성은 “조심해”라며 혐오를 선동하기도 했다. 성소수자를 향한 욕설이나 적대적 표현은 인용조차 꺼려질 만큼 섬뜩하고 치욕스럽다. 그런가하면 한국 여성 전체를 비난하는 “김치녀·년” “김여사”처럼 다수를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말이 관용어가 될 만큼 혐오가 일상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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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처럼 퍼져있는 혐오와 차별을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혐오와 차별의 해악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혐오는 피해자에게 두려움과 슬픔, 지속적인 긴장감을 갖게 하며 자존감이 손상되고 무력감과 소외에 시달리게 한다. 심한 경우 자살 충동과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기도 한다. 한 예로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이성애자에 비해 2~3배 높다. 혐오와 차별의 결과로 피해자들은 고립된 채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동시에 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더 강화된다.

놀라운 사실은 대선이 2주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이 같은 혐오와 차별에 대한 대책을 선거 공약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광범위하면서도 뿌리 깊은 혐오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 그러나 후보들은 현란한 구호와 공약으로 표심을 자극하면서도 혐오와 차별 문제를 외면하거나, 심한 경우 혐오와 차별 세력에 동조하기도 한다. 일부 후보는 ‘사회적 합의’가 안됐다며 시기상조론을 펴고, 또 다른 후보는 “성소수자는 지지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안된다”며 지나치게 몸을 사리기도 한다.

인권은 개개인의 고유한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인권은 다수의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나중을 기약하면서 유보되어야 할 항목이 될 수도 없다. 인권은 인간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보편적인 권리다. 특히 소수자에게 인권의 가치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만을 놓고 보면 이번 대선은 10년 전보다 오히려 후퇴한 셈이다. 법무부에 의해 차별금지법이 첫 발의된 것은 2007년이다. 이후 17~19대 국회에서 7번의 법안 발의가 있었지만 번번이 정파적, 종교적 이유를 빌미로 무산됐다. 그러는 사이 혐오는 기승을 부리고 인권의 가치는 오염되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토대인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 국민의 존엄과 평등을 일상 속에 뿌리내리기 위함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과 인권이사회 또한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에 8차례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5개월이 넘도록 광화문과 전국 각처에서 간절하게 든 촛불이 특권적 소수의 전횡에 대한 분노에 국한될 수는 없다. 차별받고 혐오받는 소수에게 일상의 미세먼지를 걷어내고 봄볕을 두루 누리도록 하는 것, 그런 세상을 향한 염원이 들어있음을 믿고 싶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