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한국의 서양 지식 도입사(史)가 일본의 이런 치열한 지적(知的) 노력에 무임승차해 온 측면

좋은글
졸문에서 '아우라'란 외래어를 썼다가 독자에게 핀잔 들은 일이 있다. 아우라(aura)는 미술품 등에서 원본이 갖고 있는 흉내 낼 수 없는 기운과 감동 같은 걸 뜻한다. 예술 관련 책에선 낯선 말이 아니다. 그런데 독자 한 분이 댓글을 달았다. "아우라? 문맥상 무얼 뜻하는지는 알겠는데 너무 어렵다. 내가 무식해서 그러나?" 그 의미를 전하되 좀 더 많은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고민할 수 없었는가. 독자는 그렇게 추궁하고 있었다.

사실 나 역시 글을 읽다가 생경한 말들의 행진에 질려 책을 덮은 적이 한두 번 아니다. 특히 서양의 높은 지성을 소개하는 글들이 그랬다.

아우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어려운 말로 '아 프리오리(a priori)'라는 게 있다. 칸트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몇 가지 개념 중 하나라고 한다. 이 말을 놓고 요즘 철학계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칸트학회가 국내 처음 '칸트 전집'을 발간하면서 이 말을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아 프리오리'라고 쓰기로 한 게 발단이다.

그간의 연구서에서 '아 프리오리'는 '선험적' '선천적' '선차적(先次的)' 등으로 번역돼 왔다. 그러나 학회가 칸트의 또 다른 중요 개념인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을 먼저 '선험적'으로 번역하기로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학회는 두 차례 학술회의를 열어 '아 프리오리'에 합당한 번역어를 찾으려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a priori'를 그냥 '아 프리오리'로 쓰기로 했다.

칸트가 쓴 '아 프리오리'는 문맥에 따라 워낙 여러 가지 뜻으로 쓰여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한다. 단어 하나 번역을 위해 두 차례나 학술회의를 열었다는 것만도 우리 학계에선 보기 어려운 일이다. 칸트학회의 고충은 알겠다. 그들의 노력도 이해한다. 그렇다고 국내 칸트 전문가들이 칸트 연구 100년의 성과를 집대성했다면서 칸트의 핵심 개념을 번역 못 하고 독자에게 떠넘긴 게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전공 학자들도 해결 못 하는 걸 날것으로 던져놓으면 독자들에게 읽으라는 소린가 말라는 소린가.

'사회' '개인' '근대' '미(美)' '연애' '존재'…. 150년 전 일본은 서양의 낯선 개념들을 번역하며 완전히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서로 다른 번역어들이 경쟁했고, 이 가운데 좀 더 나은 말들이 공감을 얻어 정착됐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본은 서양의 개념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서양 지식 도입사(史)가 일본의 이런 치열한 지적(知的) 노력에 무임승차해 온 측면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보다 100년 뒤늦게 '칸트전집'을 내면서 '아 프리오리'를 번역 못 해 날것으로 내놓는다면 우리가 그동안 해 온 것은 무엇인가. 'a priori'가 한국 철학책에서 '아 프리오리'로 남아있는 한 한국인들의 사유와 칸트 철학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江)이 있는 것이다. 20여년 전 라캉, 들뢰즈, 데리다 같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의 저서가 학계와 출판계를 풍미한 적이 있다. 이들의 사상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넓고 깊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만약 기대에 못 미쳤다면 번역어 문제도 한몫했을 것이다.

무조건 쉬운 말만 쓰자는 게 아니다. 좀 더 고급한 사유를 발전시키되, 아무리 어려운 개념이라도 최대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말을 갈고 닦는 건 지식인의 책무다. '아 프리오리'에 관해서 다른 해법은 없을까. 칸트학회 회원들은 그걸 찾아내리라 믿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