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김정은의 고민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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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핵실험과 수많은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했지만 국제사회는 요란한 엄포만 남발할 뿐 병진정책에 결정적 지장을 초래할 고강도 제재를 취하지 못할 것이란 내 판단은 용케도 적중했다.

 이제 한숨 좀 돌릴 때가 되었나 싶었는데 2017년 들어서면서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트럼프라는 ‘괴물’의 출현이다. 나보다 더 터프하고 예측 가능성이 낮은 강적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도무지 대책이 안 보인다. 미국 대통령이 하필 왜 ‘공화국’만 정조준하나. 왠지 정유(丁酉)년 운세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트럼프가 어떻게 나오든 핵미사일 개발은 중단할 수도, 양보할 수도 없다. 핵탄두를 미국 본토까지 운반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해야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정책’에 맞설 수 있고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민란이 일어나도 미국이 감히 군사 개입 엄두를 못 낼 것이고 협상에 끌려 나가도 꿀릴 것이 없다. 외세 개입만 막을 수 있다면 수백만 명을 학살해서라도 권좌를 지켜낼 자신이 있다.

 핵탄두는 앞으로 한두 번 실험만으로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 경량화에 문제가 없지만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용량이 큰 신형 엔진을 개발하고 재진입 기술까지 확보하려면 수십 번 시험발사가 필요하다. 핵실험은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지만 미사일 시험발사는 머뭇거리거나 지체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핵 포기를 강요하기 위해서라면 중국의 급소라도 찌르겠다는 트럼프의 비장한 모습에 저승사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와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제재해도 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대만 카드까지 들이댈 기세다. 중국이 아무리 ‘공화국’을 지켜주고 싶어도 미국이 대만에 첨단무기를 판매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것까지 방관할 수 있을까? 미국에 거칠게 저항하면서도 내 등 뒤로 칼을 들이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지레 겁먹고 트럼프에게 먼저 손 내밀면 미국 내 강경파들은 더욱 기고만장해 내친김에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려고 날뛸지 모른다. 괜히 약한 모습 보였다가 더 강도 높은 압박만 자초하고 짓밟히는 것보다는 탄도미사일 발사든 핵실험이든 강행해 대미항전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낫겠다. 미중이 ‘공화국’을 고립 압살할 기세로 나오면 그때 가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하고 평화 공세로 나가면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금년 남조선 대선에 한 가닥 희망이 보인다. 친북 진보세력이 집권하면 향후 5년은 무사히 버틸 수 있다. 새 정부가 국제공조 체제에서 이탈해 ‘공화국의 명줄’ 역할을 맡아준다면 중국과 미국이 아무리 우리를 못살게 굴어도 핵을 지킬 수 있다. 사드 배치까지 막아준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자유도 보장받는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