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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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상이라는 게 있다.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글솜씨를 발휘한 저자에게 주는 상이다. 1993년 미국 록펠러대학이 제정했다. 역대 수상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네 명이나 됐다. 아인슈타인도 글을 잘 썼다. 우연이 아니다. 생각을 체계적·합리적·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은 무엇을 하든 필수다. 미국 의대 시험에서도 에세이를 중시하는 이유다.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서구 고등교육의 근간은 수사학(修辭學)이다. 글로든 말로든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방송을 보면 길 가는 아무한테나 마이크를 들이대도 자기 생각을 풍부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그저 "너무, 너무" "… 같아요"만 연발한다. 앞뒤가 뒤죽박죽이어서 글로 옮겨 놓으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도 없다. 때론 한국어를 배운 지 3~4년 된 외국인이 우리보다 더 조리 있게 한국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도 예부터 글을 잘 쓰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강조했다. 이런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다 한국에 들어온 사람 불만 중 상당 부분이 글쓰기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객관식 문제 한두 개 맞히는 데 목숨 거는 세상에선 글쓰기 교육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해진다.
▶올해 초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신입생 글쓰기 평가를 했더니 39%가 70점 미만을 받았다. 주제를 벗어난 데다 비문(非文)에 맞춤법도 엉망이다. 채점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나 제대로 평가하면 점수는 훨씬 더 떨어질 것이다. "거시기하다"는 등 비속어, 인터넷식(式) 엉터리 문체가 과제물에 넘쳐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요즘 신입 사원은 영어보다 국어 실력이 문제"라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낸시 소머스 교수가 그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짧은 글이라도 매일 쓰라. 그래야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하버드 대학 신입생은 한 학기 적어도 세 편 에세이를 쓴다. 교수가 일일이 첨삭 지도한다. 사회에서 리더가 된 졸업생에게 '성공 요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이 '글쓰기'였다. '능력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이란 질문에 대한 답도 단연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다. 생각의 근력(筋力)을 키우는 일이다.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회는 주관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냄비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갈등도 빈발한다.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우리 모습 아닌가.
-조선일보-

북한이 적이면서 동포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결국 ‘투 트랙’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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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포기하고 안보만 하려면 남북 대화나 교류·협력 대신 북한에 대한 군사적 방비만 철저히 하면 된다. 즉 군사적인 측면에만 집중하는 ‘외곬’ 정책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북한이 적이면서 동포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위해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결국 ‘투 트랙’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평화 지키기’(peace keeping)를 하면서 동시에 ‘평화 만들기’(peace making)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행정부에 국방부와 통일부가 같이 있는 것이다.
북한을 ‘적’으로만 보는 ‘외곬’ 대북정책, 즉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우리의 최대 안보현안인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에 극명하게 입증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대북압박과 제재로 북한을 붕괴시키면 핵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통일까지 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남북관계를 단절시키고 북핵 6자회담 개최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 9년 동안 북한은 붕괴되지 않았고 핵능력만 고도화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초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임기 내내 안보를 이유로 대북압박만 강화하더니 결국 우리 국민들이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를 안보 위기 상황을 초래해놓고 떠났다.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엄청난 난제를 떠안고 출범했다.
한-미 공조는 북핵문제 해결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그런데 그동안 북핵 관련 한·미의 정책은 엇박자를 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국이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한국이 압박을 주문한 적도 있었다.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핵문제 해결 여건을 조성하려고 할 때 미국이 대북 압박을 시작함으로써 상황이 오히려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1990년대 초 불거진 북핵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북핵능력이 오히려 고도화된 데는 한·미 대북정책의 ‘미스매칭’(mismatching)이 되풀이된 탓도 크다.
그런데 최근 한·미가 대북정책의 미스매칭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짐이 보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초 미국에서 대북 선제타격론, 북한 정권교체론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한때 ‘한반도 4월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4월26일 트럼프 정부가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공식 발표했다. 대북 압박을 강하게 하되 압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정부가 투 트랙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새벽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강력한 대북경고를 하면서 ‘제재와 대화 병행’이라는 자신의 대북정책 기조를 공식 천명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위협에는 제재도 불사하지만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평화 지키기와 평화 만들기라는 투 트랙 정책으로 북한을 상대하면서 남북관계도 개선하고 북핵문제도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대선 준비 과정부터 투 트랙 대북정책 기조를 정립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트럼프 정부의 ‘압박과 관여’라는 투 트랙 대북정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북정책의 방향과 기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한-미 공조가 이전 정부들에 비해서 훨씬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 임기 중 북핵문제 해결이 상당히 진척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앞으로도 군사적 도발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 공조 여건은 나쁘지 않다. 문재인 외교안보팀은 출발부터 트럼프 정부와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의 큰 획을 긋기 바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병행’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외교력은 결국 남북관계에서 나온다.
-한겨레-

제대로 된 계몽주의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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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정당을 지지하고, 동일한 신을 믿고, 비슷한 미래를 원한다면? 분쟁도, 전쟁도 없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꿈꾸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 현실에서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선호도가 나와는 너무도 다르고 능력도 천차만별인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아니, 오늘의 나마저 어제의 내가 원하던 것과 다른 걸 원하기도 하니, 선호도의 다양성이야말로 존재의 가장 근본적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선 개인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남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지 않는 한 선호도의 다양성을 절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핵심이다. 무신론, 기독교, 불교, 이성애, 동성애, 육식주의, 채식주의 등 모두 자기 취향대로 택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프로이센 군주 프리드리히 2세는 그러기에 "각자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했고, 미국 헌법 역시 '행복 추구'를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과 선호도만으로는 절대 이루어낼 수 없는 행복의 조건들도 존재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채식주의자로는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만, 혼자만의 능력으론 병원도, 공장도, 인터넷도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수많은 구성원의 시간과 능력을 집합해야만 가능한 거시적 차원의 행복 조건들. 어떤 행복의 조건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실현할지 합의해야 하기에 정치도, 국회의원도 필요하다. 물론 이론적인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가장 많은 구성원의 최대 효용(utility)을 가장 많이 증가시키는 사회적 선택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믿음이 현대 민주사회의 본질인 공리주의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만약 공리주의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사회의 거시적 행복이 개인의 미시적 행복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우리는 어느 행복에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어쩌면 제대로 된 계몽주의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 이제 우리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본질적인 계몽주의적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김대식의 브레인스토리
-조선일보-

나무 곁으로는 수없이 많은 무엇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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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무가 있다.  

나무 곁으로는 수없이,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무엇이 지나갔다. 어떤 것은 길게 머물렀고, 어떤 것은 짧게 머물렀다. 어떤 것은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어떤 것은 향기만 남겼다. 그리고 틀림없이 모든 것은 사라졌다. 지금 머무는 것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사라졌다고 해서 정말 사라진 것일까. 시간이 재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고 해서 의미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 나무 안에 깃들어 있다. 새싹이었을 때 다정했던 흙의 온기, 어린 나무였을 때 찾아와 준 바람, 폭우 속에서 함께 흔들렸던 작은 생명들까지 말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스치듯, 혹은 진하게 조우했던 모든 인연이 있었다. 그 인연은 사라졌거나 사라져간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과 의미는 또다시 찾아온다. 시 ‘안부’는 우리 안에 깃들어 있던 소중한 사람, 그러나 조금 희미해지고 있는 한 사람을 불러낸다. 예전에 만나 가까이 지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누군가에게 시인은 안부를 건넨다. 만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움을 떨칠 수 없어서 꽃잎을 강물에 띄워 보낸다. 이 꽃잎은 내 마음을 싣고 넘실넘실 흘러갈 것이다. 버스와 전화가 연결해주지 못하는 거리를 넘어갈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그저 상상만 하는 강의 저 끝에서는 그 사람의 마음과 만날 것이다. 무슨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보고 싶고 묻고 싶다. 그저 좋았던 그 사람, 좋았던 그 시절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내 안에 그윽하다.
-경향신문-

생체 간이식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고 기술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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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1시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병원동 1층 구내식당. 아내 정민소(81)씨가 고기 볶음 반찬을 국에 헹궈서 남편 백지용(80)씨의 수저에 얹어준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신장이 좋지 않은 남편이 나트륨을 덜 먹게 하기 위해서다. 식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백씨가 아내의 식판까지 치우고 온수와 냉수를 적당히 섞어서 아내에게 건넨다.
 
21일은 부부의 날, '최고 사랑=장기기증' 부부
5년 전 간암앓던 남편에게 부인이 간 70% 기증

간 기증 상한연령 55세 의학교과서 바꿔
5년 동안 아무 부작용 없어..따뜻한 부부애 덕

아내 "남자는 애기, 여자가 보듬어야"
남편 "아내 말 따르면 행복이 찾아와"

 "저 양반이 안스러워요."
 
 백씨는 아내를 '저 양반'이라고 칭했다. 자신에게 간을 떼준 걸 두고 하는 말이다. 2012년 4월 정씨는 자신의 간의 70%를 간암을 앓던 남편에게 줬다. 당시 정씨는 만 76세, 백씨는 75세였다. 의학계에서는 부부 간의 장기 기증을 최고의 사랑으로 평가한다.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백지용씨 부부가 다정스럽게 앉았다. 아내 정민소씨는 5년 전 76세 나이에 남편에게 간을 기증했다. 세계 최고령 기록이다. 우상조 기자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백지용씨 부부가 다정스럽게 앉았다. 아내 정민소씨는 5년 전 76세 나이에 남편에게 간을 기증했다. 세계 최고령 기록이다. 우상조 기자
 백씨 부부의 사례는 사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국립암센터 김성훈 장기이식실장은 "지금도 76세 간 기증은 세계 최고령 기록이다. 서구에는 60대 기증자가 아예 없고 일본에 몇 명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세계 간이식 교과서는 생체 간기증이 가능한 최고 연령을 55세로 본다. 정씨가 의학교과서를 새로 쓴 것이다. 생체 간이식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고 기술도 최고다. 덕분에 당시 수술 시간과 입원 기간도 평균보다 더 짧았다.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정민소씨가 남편을 안고 있다. 76세에 남편에게 간의 70%를 떼줬다. 부부애 덕분에 두 사람 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우상조 기자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정민소씨가 남편을 안고 있다. 76세에 남편에게 간의 70%를 떼줬다. 부부애 덕분에 두 사람 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우상조 기자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지금까지 간 기능에 어떤 문제도 없다. 김 실장은 2014년 간이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미국이식학회지'에 부부 사례를 소개하는 논문을 실었다. 당시 학회지 편집장은 "아무나 따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고 한다.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수술이었다. 김 실장은 "두 환자가 잉꼬부부다. 남다른 부부애가 수술 성공의 정신적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술은 정씨가 떼를 써서 이뤄진 것이다. 백씨는 2004년 간암이 발병해 간의 일부를 잘라냈다. 54세에 은행을 퇴직할 때까지 술을 너무 즐겨 마셨고 B형간염을 치료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2011년 간암이 재발했다. 3기였다. 수술할 수 없는 상태여서 색전술(혈관을 막아 암세포를 말려죽이는 것)을 시도했으나 듣지 않았다. 6개월도 채 못 산다는 진단이 나왔다. 유일한 치료법은 간 이식뿐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치료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둘이 살다 남편을 먼저 보내면 어떻게 살지 막막하더라구요."
 
 정씨는 무조건 간을 떼주기로 맘 먹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76세 할머니의 간을 이식한 전례가 없고, 자칫 잘못될 수도 있어서였다. 정씨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40년 동안 운동을 해서 다진 몸이예요. 지금까지 감기 한 번 안걸렸고 고혈압·당뇨 같은 흔한 병도 없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생떼를 못 이겨 김 실장이 "그러면 검사해 보자"고 물러섰다. 김 실장의 고백이다.
 
"검사에서 뭔가 이상이 나올테고 그걸 내세워 수술을 안하려고 했지요.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는 거예요. 고령인 점 말고는."
 
정씨는 수술 날짜 잡은 걸 자식(아들 둘, 딸 하나)에게 숨겼다.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들키고 말았다. 자식들이 나섰다. 하지만 셋 다 B형간염을 앓은 흔적이 있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수술 전날 밤 딸(47)이 "엄마가 잘못 되면 우리는 고아가 된다"며 간곡히 말렸지만 정씨를 막지 못했다. 정씨에게 물었다.
 
-세계 최고령 수술인데 무섭지 않았나요.
"수술 중에 심장이 멎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에이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어요. "
 
-지금도 후회하지 않나요.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
 
정씨는 수술 날짜를 잡고 나서 남편의 배(간 있는 부위)에 자신의 배를 부볐다. 정씨는 "킹짱구(남편의 간)가 왕짱구(내 간)와 친구가 돼 잘 받아들여달라고 기도했지요. 거부 반응이 없던 게 이런 이유가 있지 않았나 해요"라고 말한다.
백씨 부부의 1961년 약혼사진
백씨 부부의 1961년 약혼사진
백씨 부부가 50대 초반 시절 속리산 문장대에 올랐을 때의 모습.
백씨 부부가 50대 초반 시절 속리산 문장대에 올랐을 때의 모습.
 백씨의 아내 사랑도 정씨 못지 않다. 1961년 결혼하기 5년 전 상업은행 부산지점에서 동백꽃과 속옷을 명동지점의 정씨에게 수 없이 보냈다. 당시 보기 드문 구애작전이었다. 처가에서 한 살 적은 사위를 싫어할까봐 동갑이라고 속였다.
 
백씨는 아내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빠질까봐 '셰프'를 자처한다. 항상 장을 보고, 아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요리와 닭볶음탕을 내놓는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저지방 우유를 타 아내에게 건넨다. 청소도 백씨 몫이다.
 
-아내의 좋은 점 한가지만 꼽아주세요.
"다 좋습니다. 80살이 넘어도 고와요. 예쁘고 복스럽고……."
 
-그래도 한 가지 꼽아주시죠.
"한 가지만 꼽을 수가 없어요. "
 
부부는 "우리는 같은 날 세상을 뜨기로 했다. 안 되면 같은 달이라도 좋다"고 말한다. 정씨는 "요즘 이혼을 많이 하는데, 헤어지고 나면 절대 그만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남자는 항상 '애기'라고 생각하고 보듬어야 해"라고 말한다. 백씨는 "아내 말을 들으면 행복이 따라온다"고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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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의 일에 참견 마라’는 ‘별관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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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중국에 취재차 처음 갔을 때 교통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도로에 쓰러져 있는데도 행인들이 모두 구경만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관 역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는 그대로 방치됐다. 중국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다. 6년 전 항저우(杭州)에서는 시후(西湖)에 빠진 여아를 보고도 구경만 하자 우루과이 여성 관광객이 뛰어들어 구해 중국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이런 오불관언(吾不關焉) 현상은 중국 언론도 자주 비판한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개선은커녕 되레 심화되고 있다. 린위탕(林語堂·1895∼1976)은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이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데 따른 부작용으로 설명했다. 문화와 습속이 다른 이민족의 지배가 많았던 중국에서 끼어들었다가 피해를 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를, 제자가 스승을 고발했던 문화대혁명의 반작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 산둥 성 웨이하이(威海) 시 터널에서 일어난 통학버스의 화재 참변으로 한국과 중국 유치원생 11명이 숨졌다. 인터넷에 오른 사고 장면을 보며 누리꾼들은 “지나가던 운전자가 잠시 멈추고 밖에서 창문만 깨줬더라도 모두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중국인의 시민의식 부재를 아쉬워한다. 이 때문일까.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이례적으로 유족을 위로하고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남의 일에 참견 마라’는 ‘별관한사(別管閑事)’ 추방운동을 벌여 보면 어떨까.
-동아일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하는 역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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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민주주의 근간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연권 사상이다. 이를 기반으로 세운 최초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였다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인간에게 부여했으며, 여기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 권리가 포함된다"는 '독립선언서'(1776년)에 입각해 탄생한 아주 예외적인 국가다.

미국 예외주의는 양면성을 갖는다. 내부적으론 세계 일등의 민주 국가가 됐지만, 밖으론 미국 우월주의로 변용돼 패권 국가로 나아가게 했다. 이 둘 사이 모순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양사의 모범이 되는 아테네와 로마 모두 공화국 시민의 자유와 제국의 패권 사이 모순 때문에 멸망했다. 내부의 건전한 시민적 덕성을 토대로 성립한 공화국이 강대해져 외부로 팽창해 제국이 되면 시민 정신이 타락해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존스홉킨스 대학 포칵(Pocock) 명예교수는 그런 공화정의 문제점을 통찰한 선구자가 마키아벨리라고 보고, 그 전환의 순간을 '마키아벨리언 모멘트'라고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28일(현지시각)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NRA) 총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미국 혼자선 세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미국 없인 세계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해야 하는 특별한 나라다. 이 특별한 나라에서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제국으로서 미국 역할은 끝내고 미국 우선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공약으로 당선됐다. 당선되자마자 이민 국가 미국의 정체성을 지우는 조처를 단행했다. 국내 시민의 부와 행복을 위해 문을 닫고 장벽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올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걸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그는 중국과 거래할 지렛대로 북핵 문제를 이용한다. 이 거래에서 한국은 배제돼 있다. 오늘 마침내 한국의 운명을 책임질 지도자가 등장한다. 최우선 과제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하는 일이다. 시진핑 주석은 잘못된 한국사를 강의했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뇌한 민주공화정과 제국 사이 모순에 대해 통찰하는 '마키아벨리언 모멘트'에 대한 품격 높은 역사 강의를 해야 한다. 미국의 건국이념에 입각한 한·미 동맹이 미국이 처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길임을 설득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데가지즘(dgagisme)'이다. '구시대의 정치권과 인물을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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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랑스 대선 정국에서 낯선 용어가 하나 등장했다. '데가지즘(dgagisme)'이다. '구시대의 정치권과 인물을 청산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소용돌이친 격동의 현대사를 겪었지만, 이 새로운 주의(主義)는 도무지 낯설기만 하다. 프랑스도 탈당과 분당, 당명 교체 등 이합집산이 빈번해서 정치 지형이 복잡한 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정치 상황이 아니라 어원을 통해서 접근하면 의외로 쉽게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다.

영어든 불어든 'gage'는 담보라는 의미다. 담보를 잡히는 행위를 뜻하는 영어 동사가 '인게이지(engage)'다. 이 동사의 명사형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다. 불어로는 '앙가주망'으로 읽는다.

영어나 불어에서 이 단어의 쓰임새는 넓다. '약혼'이라고도 번역하지만 실은 '구속'이나 '참여'라는 뜻이다. 상대가 사랑하는 연인이 됐든, 현실이 됐든 그 속으로 뛰어들 때만 약혼도 할 수 있고 참여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프랑스 사상가 사르트르가 지식인의 실천을 강조할 때 사용했던 그 말이다. 어떤 일이든 뛰어들면 구속이나 의무가 따르게 마련이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와 약혼이 같은 단어가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4월23일(현지시각)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5월7일 치러지는 결선 투표에 진출한 중도 신생 정당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후보가 파리에 있는 자신의 선거본부에서 24세 연상의 아내 브리지트와 함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 반대말에 해당하는 동사(動詞)가 '데가제(dgager)'다. 이 단어에는 벗어나고 탈출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이 동사의 명사형이 '데가주망(dgagement)'이고, 정치사상이나 철학의 차원으로 한 차원 격상시킨 신조어가 '데가지즘'이다. '데가지즘'은 당초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시위 당시 독재자의 퇴진을 요구하며 외쳤던 구호에서 유래했다. '반짝 유행어'에 그칠 줄 알았더니 올해 프랑스 대선 정국에서는 공산주의와 실존주의를 이을 정치사상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결선에 진출할 프랑스 대선 후보 2명을 가리는 지난달 1차 투표에서도 기존의 좌우파 정당 후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결국 올해 프랑스 대선은 창당 1년밖에 되지 않은 중도 신생 정당인 '전진(En Marche)!'의 에마뉘엘 마크롱(40)과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9) 후보의 맞대결 구도가 됐다. 오는 7일 실시되는 2차 투표에서는 마크롱의 당선이 유력하다. 하지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이 담긴 '데가지즘'은 올 프랑스 대선 국면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앙가주망'을 평생 화두로 삼았던 사르트르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무덤에서 통탄할지도 모르겠다.

'데가지즘'의 부상은 계층과 이념, 지역이라는 든든한 지지 기반을 갖춘 뒤 집권을 놓고 격돌하는 근대식 선거 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부단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정당 역시 언제든 냉소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얼마나 다른 걸까.
-조선일보-

세계무대에서 통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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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백지선과 히딩크의 리더십
요즘 선전을 거듭하는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보면 15년 전 축구 대표팀이 떠오른다. 현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진단과 적절한 처방이 있으면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하키의 변방 아시아에서도 B급 정도로 취급받던 한국이 이제 세계 톱 리그(16강)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팬들은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날이 올 줄 몰랐다"며 흥겨워한다.

평창올림픽에서의 선전을 위해 리그 활성화, 특별 귀화 선수 영입, 개최국 자동 출전권 부활 등을 이뤄온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은 대표팀에 눈 밝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캐나다 교포 출신인 백지선 감독을 영입했다. 그는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서 두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세계적인 수비수였다.

2014년 한국 대표팀을 맡은 그는 세계무대에서 통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4강을 경험했던 히딩크가 월드컵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꿰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히딩크는 부임하자마자 독특한 현실 진단으로 국내 지도자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 선수들이 개인기는 괜찮은데 체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국내 지도자나 팬들의 생각과 정반대였다. 선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공포의 삑삑이(20m 셔틀런) 훈련' 처방이 그런 진단에서 나왔다. 요즘 한국 아이스하키도 경기 막판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NHL에서도 통할 체력이 필요하다며 백 감독이 도입한 훈련 프로그램 덕분이다. 2년 전부터는 아예 NHL 전문 트레이너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지옥 훈련'을 맡겼다. 체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압박을 펼치는 한국 스타일에 부담을 느끼는 상대가 적지 않다.

히딩크 감독에게서 축구 특강을 들어본 적이 있다. 비디오 분석관이 동영상을 틀자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수비하다 상대의 공을 빼앗았을 때 나머지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줬다. 상대 진영 빈 공간을 향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선수들의 움직임은 예술이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이 비슷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

백지선 감독은 비디오 분석과 함께 시스템 북을 즐겨 활용한다. 시스템 북은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려주는 전술 지도이다. 포지션별 맞춤 훈련을 통해 길눈이 트이기 시작한 선수들이 "더 가르쳐 달라"며 감독을 조른다. 그는 "예전 우리 선수들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불안해했다"며 "왜(why)를 설명해주는 게 감독의 일"이라고 했다.

히딩크가 한국 선수들의 위계 문화를 깨려 노력했던 것처럼 백 감독은 '팀 스피릿'을 강조한다. 한 골 넣고는 너무 좋아하다 역습을 허용하거나, 한 골 실점하면 주저앉던 예전 대표 선수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히딩크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했던 것보다 백 감독은 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운다. "평창 목표는 금메달"이라고 했다. 그는 "꿈은 크게 꿔야 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망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리더십 부재를 앓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