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

축구든 인생이든 운동장은 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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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麗水漫漫] 여수 앞바다에는 섬만 수백 개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제발 우중충한 '개량 한복'은 안 입고 나왔으면 좋겠다. 꼭 회색 아니면 진한 고동색이다. 요즘 환한 색의 예쁜 개량 한복도 참 많다. 흰머리가 가득한 '꽁지머리'는 정말 '으악'이다. 아내는 화면으로 보고만 있어도 '쉰내'가 난다며 채널을 돌리라고 야단이다. '야전 상의'에 '건빵 바지'도 빠지지 않는다. '야전상의'의 목덜미는 묵은 때로 반질반질하게 굳어 있을 게 분명하다. 수년간 면도를 건너뛴 얼굴은 구구절절 꼬질꼬질하다. 그런데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자연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모 방송 프로그램의 주인공들 이야기다. 리모컨을 돌리다 보면 꼭 걸려든다. 내용이야 수년째 한결같다. 모든 주인공이 산에 약초 캐러 올라간다. 이 풀은 어디에 좋고, 저 열매는 어디에 좋다는 근거 불분명한 이야기만 한참 늘어놓는다. 죄다 한의사다. 산에서 내려오면 텃밭에서 상추나 파를 따서 저녁을 한다. 불을 피워서 대충 요리하는 모습은 세상의 모든 여자가 질색할 수준이다. 아주 더럽다. 안 보여주는 게 더 나을 법한, 아주 대충 하는 설거지가 끝나면 불 앞에서 이전에 고생한 넋두리가 이어진다. 그 이야기 또한 거기서 거기다.

이 '저렴한' 프로를 나만 보는가 해서 물어보니, 내 또래 인간들은 죄다 '자연인' 마니아다. 기사를 찾아보니 지상파와 종편을 통틀어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톱 텐'에 매년 꼭 들어간단다. 그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 이 '장마철 걸레처럼 쉰내 나는 방송'이 한국 사내들에게 이토록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자유'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종류의 '자유'인가? 우선, 마음껏 '불 피울 수 있는 자유'다. '불 피우기'는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인류 역사에서 모든 '의미'는 '불 피우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적 리추얼에 '불 피우기'가 빠지지 않는 거다. 한국 사내들의 느닷없는 캠핑 열풍도 이 '불 피우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다. 삶의 의미가 찾아지지 않으니 자꾸 이상한 '불장난'만 하는 거다.

더 중요한 자유가 있다. '시선의 자유'다. 이건 한국 사내들에게 매우 절박한 자유다. 평생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며 평생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학창시절 시험감독 선생님은 항상 교실 뒤쪽에 있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고 생각하고 커닝 따위는 엄두도 못 냈다. 시험지를 교탁에 올려놓고 돌아보면 감독 선생님은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참 허망했다. 그러나 한국 사내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감시의 시선은 항상 작동한다. 과장이나 팀장의 위치는 부하 직원들을 한눈에 감시하는 위치에 있다. 몸도 마음도 꼼짝 못 한다.

선글라스가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감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시의 공포'가 '경외'로 둔갑하는 것이다. 물론 내 친구 문창기처럼 가릴수록 멋있는 경우도 있다. 아주 고급스러운 커피 사업을 무지하게 크게 하지만, 진짜 '컨추리'하게 생긴 창기는 선글라스를 쓰면 참 멋있다. 거기에 황사마스크 하고, 모자까지 눌러 쓰면 진짜 폼 난다. 창기는 강남의 그 비싼 회사건물 옥상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다.

'관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볼 수 있는 자유'가 행복의 핵심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넋 놓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누리는 '시선의 자유' 때문이다. '시선'과 관련해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Jay Appleton)은 '조망-피신(prospect-refuge)'이론을 주장한다. '먼저 보고, 도망칠 수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생존원칙이 인간의 모든 미학적 경험에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일단 먼저 보고 도망쳐야 한다. 사냥할 때도 마찬가지다.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산 위에 올라가거나 한없이 펼쳐진 바닷가에서 행복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조망-피신'이라는 원시시대의 본능 때문이다. 중년 사내들이 주말마다 골프장에 나가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도 바로 이 '조망-피신'의 기억 때문이다. 골프장은 원시시대의 사바나처럼 멀리 조망할 수 있다. 중간중간 나무가 있어 숨을 곳도 있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최근 나는 여수 섬 바닷가의 무너져가는 미역 창고를 헐값에 샀다. 지금 쓰고 있는 화실은 세 들어 있어 언제고 내줘야 한다. 집주인에게 팔라고 수차례 애원했지만, 거절당했다. 하긴 내가 집주인이라도 절대 안 판다. 여수 인근의 '조망-피신'이 좋은 '명당'은 도무지 구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수 앞바다에는 수백 개의 섬이 있다.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있어 먼저 보고 도망가는 데 아무 문제 없다!

이번에도 박치호 화가 때문이다. '죽이는 빈 창고'가 섬에 있다고 했다. 화가는 모름지기 극도로 외로워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며, 지금의 내 그림은 너무 안이하다고 했다. 허걱! 하루에 배가 두 번씩은 오가는 포구 옆이라 외로움도 견딜 만하다고 했다. 지난주에 불쑥 계약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 그러나 평생 '쉰내 나는 자연인'만 보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며칠 동안 '바닷가 전원주택'이란 유튜브 채널을 열심히 봤다. 젊은 사람이 바닷가에 집 짓고 좌충우돌 사는 이야기를 어수선하게 보여주는데 구독자만 28만명이란다. 거참. 자기 콘텐츠만 확실하면 '시선의 자유'와 '목구멍이 포도청' 사이의 모순은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아무튼, 축구든 인생이든 운동장은 넓게 써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조선일보-

새벽이슬에 젖은 버선발의 짧은 행보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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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생과 잡담을 나눈 건 벚꽃 날리던 인수봉 아래 밥집에서다. 돌솥에 담겨나온 곤드레밥에 그는 청국장, 나는 담북장을 얹어 비벼 먹었다. 앵두색 스웨터를 입은 안주인은 밥에 딸려나온 산채를 가리키며 요건 상춧대, 요건 취나물, 요건 목이버섯이라 일러줬다. 아마씨를 밥 위에 솔솔 뿌려주면서는 천혜의 보약이라 호들갑을 떨었다.

오 선생 모친 이야기가 나온 건 돌솥에 불린 숭늉을 들이마실 때다. "갓 지은 밥 먹으니 어머니 생각 간절하네요." 그러고 보니 오 선생이 지극한 효자였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한데 그리운 사연이 엉뚱했다. "신여성이었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바쁜 세상에 밥은 무슨 밥이냐며 매일 아침 빵을 주셨어요. 눈뜨면 어머니는 이미 나가고 안 계시고, 4남매는 식빵을 우걱우걱 씹으며 등교했지요."

좋은 건 죄다 어머니 차지였다고도 했다. "당시 귀했던 오렌지가 선물로 들어오면 숨겨놓고 몰래 드셨어요. 참외를 깎을 때도 단맛 나는 위쪽은 당신이 먼저 잘라 드시고 나머지를 깎아 자식들 주시고요. 그러곤 말씀하셨죠. 너흰 살 날이 깃털처럼 많지 않니? 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앞길 창창한 너희는 나중에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이건 내가 먹으마."

6개월 집을 비우고 유럽 여행도 다녀왔다고 해서 입안의 숭늉이 튀어나올 뻔했다. 맏이가 고3, 막내가 중학 시험을 앞둔 때였다. "요즘 엄마들 상식으로도 이해 불가죠. 대한민국 어느 어머니가 애 넷을 남편한테 떠맡기고 여행을 가겠어요."

어머니는 언제고 바깥일로 바빴다. 고지식한 남편의 동네 병원 수입으로는 학교를 세워보겠다는 당신의 원대한 야망을 이룰 수 없으니 직접 생활 전선에 나섰다. "복덕방도 하고, 주식도 하셨어요. 황해도 개성 여인 아니랄까 봐 짬나면 화투라도 쳐서 돈을 따야 직성이 풀릴 만큼 셈 밝고 욕심 많고 바지런한 여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조선에서 여인으로 태어난 걸 가장 한스러워했다고도 했다. "'난 이름 가진 날이 싫다. 설날도 싫고, 추석도 싫고, 남편·자식 생일도 다 싫다' 푸념하셨지요. 내가 망나니짓하고 다니니 '야 이눔아, 아들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왜 그리 허투루 사느냐' 호통치시던 기억이 선합니다."

유별난 어머니가 원망스럽지 않으냐 물으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못 당한다'가 어머니 신념이었어요. 사랑과 희생만이 부모의 덕목일까요. 영욕의 삶, 격동의 시대를 치열하게 헤쳐나간 그녀의 투지가 철없는 아들을 사람 되게 하셨지요."


오 선생 모친은 한국 자수계 거목 박을복이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전시관에서 막 내린 '신여성 도착하다'전(展)에서 관람객들이 "피카소 같다"며 환호한 자수 작품이 그의 것이다. 이화여전에 다니다 동경여자미술대학에서 유학했으나 박을복은 삶과 예술 모두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자식들 떼놓고 6개월간 돌아본 '구라파'는 그의 예술 세계를 180도 변화시켰다. 동양 자수에 서양화풍을 접목했고, 김기창·박래현·장운성 같은 회화작가들과 협업하며 독창적인 자수 미학을 개척했다. 황창배의 화투 그림에 수를 놓아 제작한 열두 폭 화투 병풍, 이경성의 인물 드로잉에 머리카락을 심어 수놓은 '보고 싶은 얼굴'엔 위트와 해학이 넘친다. 말년에 완성한 '집으로 가는 길'은 박을복 자수의 결정판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초가삼간 찾아가는 여정이 애틋하지요. 길 끝 저 작은 집이 남편과 자식들 기다리는 집인지, 당신이 닿으려 했던 꿈의 집인지 모르지만, 이 작품을 볼 때면 가부장 통념과 악착같이 싸우고 타협하면서 승리를 거머쥐려 했던 한 여인의 분투가 느껴져 매번 눈물이 납니다."

여든이 넘도록 바늘과 씨름했던 박을복은 중풍으로 쓰러져 100세에 눈을 감았다. "마흔 넘어 장가가겠다고 하니 뭐 하는 사람이냐 물어요. 미국서 박사학위 받고 온 수재라고 했더니 '너도 참 여자 복이 없다' 하시대요. 미안하셨던 거예요. 살뜰히 돌봐주지 못한 자식들에게, 그래서 결국 당신 곁을 떠난 아버지에게."

박을복은 서울 우이동 산자락에 작은 박물관을 남겼다. 김기창이 "바늘 끝에 아로새겨진 오색의 아름다움이여"라고 예찬한 걸작들이 거기 있다. 아낙네들 고된 노동이던 바느질을 예술로 승화하고 떠난 그는 단 한 줄로 자신의 소망을 적었다. '새벽이슬에 젖은 버선발의 짧은 행보가 있었다고 어여삐 여겨주시기 바란다.'
-조선일보-

무엇보다 주식이 잘못 입금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팔아치운 삼성증권 임직원들의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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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이 우리사주에 대한 배당금을 주당 1000원 대신 1000주를 입금하는 초유의 사고를 냈다. 직원의 단순 실수였으나 그 결과 시가로 112조원에 해당하는 28억 주가 우리사주를 보유한 임직원 계좌에 잘못 입고됐고, 직원 16명은 500여만 주를 시장에 팔아치워 주가를 급락시켰다. 실제 발행되지도 않은 '유령 주식'이 시장에 나와 실제 거래까지 이뤄진 것이다. 증권사는 물론 자본시장 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는 충격적 사고다.

이번 사고는 삼성증권의 담당 직원이 단위를 착각해 '원' 대신 '주'를 클릭하는 바람에 시작됐다. 이로 인해 총 3980만원이 지급될 것이 무려 112조원어치 주식이 뿌려지는 결과가 됐다. 치명적 실수인데도 다른 직원이나 상급자가 교차 체크하지 못했다. 금융 당국의 감시 시스템도 가동되지 않았다. 발행되지도 않은 주식이 대량 거래되는데도 예탁결제원이나 금감원은 잡아내지 못했다. 증권사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가공의 주식을 찍어내 유통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증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이나 외국인의 공매도에서도 이번 같은 '유령 주식' 수법이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청와대에 공매도 금지 청원을 냈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채워넣는 투자 기법으로, 주식 실물 없는 무차입 공매는 불법이다. 하지만 삼성증권 사태를 볼 때 가공의 주식을 공매해 주가를 떨어트리는 방식이 가능한 게 아니냐고 투자자들은 의심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런 의문을 해소해주지 못하면 자칫 시스템 전체의 신뢰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주식이 잘못 입금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팔아치운 삼성증권 임직원들의 행태는 용서하기 힘들다. 임직원 16명이 내다 판 주식 대금은 총 1700억원으로, 100만 주를 팔아 350억원을 챙긴 직원도 있다. 이들이 올린 부당이익은 사후에 전액 반환토록 했지만 우리 사회 금융계 전반의 심각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조선일보-

교육부 올해 예산이 68조원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쓰면서 공교육은 뭘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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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16일과 17일, 31세 스타 강사 H씨가 부산과 대구에 떴다. 대형 콘서트홀을 메운 학생들 앞에서 그야말로 공연하듯 수학 강의를 했다. 4부에 걸쳐 진행된 행사에서 H강사는 기출 문제를 분석하고 출제 경향을 예상한 후 수험생 고민 상담과 격려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엔 참석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학습플래너에 친필 사인을 해주는 순서도 있었다. 콘서트는 사전 예약 3일 만에 전석이 마감됐다고 한다. 

▶H 강사가 서울 강남의 300억대 빌딩을 구입했다고 해서 화제다. 그는 강남에 또 하나의 빌딩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인 그는 수강생의 집중도를 유지시켜 가는 강의법으로 평가받는다. 딱딱한 수학 강의를 풍부한 유머와 비유를 섞어 끌어간다는 것이다. 외모도 훤칠하다. 몇 년 전부터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사로잡은 그는 수험생들에겐 아이돌 스타나 다름없다. 


▶과거엔 좁은 의자에 수백 명이 걸터앉아 잘 돌아가지도 않는 선풍기 밑에서 공부하던 것이 학원 강의실 풍경이었다. 수강생은 많아야 수백 명 정도. 2000년대 초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면서 강의 풍경과 내용이 확 바뀌었다. 강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가르칠 수도 있게 됐다. 그러면서 1년에 100억원 이상씩 번다는 이른바 '1타 강사'들이 생겨났다. 야구의 1번 타자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1타 강사'를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강의 능력에 따라 돈을 받는다. 수강생의 성적이 안 좋으면 강사는 해고되거나 정직에 처해진다." 한국 사교육은 강의에 가격을 매기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유능하면 돈 벌고 실력 없으면 도태된다. 학교 교육에선 상상할 수 없는 성과주의가 적용된다. 

▶스타 강사들은 전속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두고 있다. 시즌마다 성형수술 받기도 하고 꼭 명품 옷을 입고 나오는 강사도 있다. 만화 공주 주인공 의상을 입고 강단에 서기도 한다. 학생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해서일 것이다. 이들한테는 교재 연구, 강의 보조 등을 하는 전속 스태프들도 딸린다. 그렇게 해서 한 해 수십억,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스타 강사는 한 명 한 명이 각각의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이다. 교육부 올해 예산이 68조원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쓰면서 공교육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조선일보-

4·3 사건이 일어난 때가 미 군정(軍政) 시절인 만큼 미국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시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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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70년을 계기로 만든 시민단체 모임 '기념사업위원회'가 7일 오후 서울 미국 대사관 앞에서 반미(反美) 집회를 열고 미·북 평화협정 체결과 한·미 합동훈련 영구 중단 등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에는 민노총 등 103개 단체가 포함돼 있고 올해 정부 예산 30억원을 지원받는다. 이 4·3위원회가 펼치는 올해 기념사업 40여 개 중 하나가 반미 시위다. 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찢어진 성조기와 함께 '대북 적대정책 폐기' '제주 4·3 학살 진짜 주범 미국은 즉각 사과하라' 등 구호가 적혀 있다. 7일 반미 시위에는 위원회 외에도 30개 단체가 참여한다고 한다. 그중엔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 남측본부도 포함돼 있다. 이 단체는 그동안 연방제 통일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더니 최근엔 '북·미 동시 핵군축' '한반도 전역 비핵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모두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4·3 사건이 일어난 때가 미 군정(軍政) 시절인 만큼 미국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시각은 있어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북한의 대미(對美) 비난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내용으로 반미 시위를 벌일 일은 아니다. 4·3 사건은 남로당의 무장 폭동을 우리 군경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이다. 군경의 진압이 지나쳐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는 위로·사과·보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사건을 일으켰던 남로당 주동 세력은 그 후 월북(越北)해 북한 정권에 참여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이 됐다. 그런데도 4·3 기념사업 단체에서 반미 시위를 계획하고 그 시위에 이적단체까지 참여하는 게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이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는 "낡은 이념의 굴절된 시각"이라고 한다.

- 조선일보 -

대통령을 4년 더 할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보겠다는 조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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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안을 내놨다. 여론조사마다 4년 중임제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50% 내외로 가장 높고, 5년 단임제는 그 절반 정도,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는 각각 10%를 밑돈다. 5년 단임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고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는 국회 힘이 더 세진다니까 국민이 질색한다. 그래서 4년 중임제 쪽으로 여론이 모이는 분위기다.

중임제가 단임제보다 좋은 점은 능력이 검증된 대통령에게 4년 더 기회를 줘서 국가적 장기 과제를 완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1987년 개헌 때 중임제를 도입했으면 누가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역대 대통령의 임기 4년 말 국정 지지율 평균을 내보니 노태우 15%, 김영삼 28%, 김대중 31%, 노무현 12%, 이명박 32%, 박근혜 12%였다. 4년 중임제인 미국에서 재선에 나설 수 있는 국정 지지율 하한선을 40% 정도로 보는데 아무도 그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

우리 국민은 바꾸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편이다. 국가별 스마트폰 평균 사용 기간은 한국이 15.6개월로 조사 대상 33개국 중에서 가장 짧았다. 미국은 18.2개월, 일본은 29.2개월이었다. 국회의원 물갈이 비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4년 겪은 대통령과 4년 더 지내겠다는 국민이 절반을 넘어야 대통령 중임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을 듯싶다.

중임제의 부작용은 뭘까. 미국 정치사의 가장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1972년 6월 전직 CIA 요원들이 낀 괴한들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서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발각됐다. 닉슨 대통령의 재선 준비팀이 상대 당 선거 전략을 알아내려다 벌어진 일이다. 그해 11월 치러진 대선에서 닉슨은 선거인단 520명을 확보해 17명에 그친 민주당 조지 맥거번 후보를 압도했다. 남의 선거 본부를 훔쳐보는 치졸한 공작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을 4년 더 할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보겠다는 조바심이 자기 무덤을 파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4년 중임제로 바뀔 경우 마찬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현역 대통령들은 재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권력을 동원하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차기(次期) 대선 후보들을 흠집 내거나 제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대통령이 부패한 정치 풍토를 적폐로 규정하고 사정(司正) 기관이 청산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면 문제 삼기도 어렵다.

개헌 방향이 중임제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이 불길하게 느껴진 것은 현 정권을 향한 검찰과 경찰의 충성 경쟁이 거의 광기(狂氣)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들도 나라 풍토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정치보복을 해왔지만 겉모습만큼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시늉을 했다. 범죄혐의를 좇다보니 전(前) 정권 관계자 연루사실이 드러나 어쩔 수 없이 처벌한다는 식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달랐다. 처음 댓글 지시 혐의를 캐다 여의치 않자 국정원 특수 활동비로 방향을 틀었고, 오래전 검찰·특검 수사까지 거쳤던 다스 실소유자 논란도 다시 털었다. 10년 전 대선 자금에 뇌물 혐의를 적용해 200장이 넘는 영장을 청구했다. 범죄 혐의를 따라가며 관련자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을 대상으로 먼저 정해놓고 가능한 혐의를 모두 뒤지는 방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MB를 향해 "분노한다"고 공개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찰도 질세라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후보들이 결정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춤형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

중임제가 되면 권력과 검경은 운명 공동체로 더 단단하게 엮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검경 핵심세력의 수명도 함께 4년에서 8년으로 연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재선 경쟁자를 확실하게 손보는 공적을 세우면 2기 행정부에서 '보은 인사'라는 보너스도 따라올 것이다.

5년 단임제에서 대통령 취임 전 구원(舊怨)을 쌓은 상대를 겨냥한 정치 보복이 이뤄져 왔다면 중임제에선 대통령 정치 수명 연장을 위협할 잠재적 경쟁자가 사정(司正) 표적이 될 것이다. 둘 다 추악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과거 정치인 대신 미래 정치인이 희생되는 것이 국가적 해악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중임제로 개헌한다면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임제의 폐해가 중임제에서 곱절로 증폭돼 나타날 수 있다.

비닐·스티로폼·플라스틱 용기는 내용물을 깨끗이 비우거나 씻고 배출해 재활용을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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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닐·폐페트병·폐플라스틱 등 재활용 쓰레기 처리 대란(大亂)이 정부의 응급조치로 일단 해소는 됐다. 환경부와 지자체들이 4월부터는 수거해 가지 않겠다고 했던 재활용업체들을 설득해 수거를 계속하겠다는 동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중국의 폐(廢)자재 수입 중단이 발단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 재활용 폐플라스틱 유통 물량의 절반을 넘는 연간 730만t을 수입해왔다. 우리도 국내 발생량의 25%인 23만t의 폐페트병을 중국에 수출해왔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작년 7월 환경보호를 위한 조치라며 올 1월부터 폐플라스틱 등 폐기물 24종의 수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재활용 폐기물 가격 폭락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재활용업계가 폐비닐·폐플라스틱의 수거 거부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이번 사태가 터진다는 것을 진작부터 내다볼 수 있었다. 유럽연합은 대응 조치로 올 1월 모든 플라스틱 포장지를 재사용하고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한다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미국도 자국 내 매립처리량을 늘리고 중국 외의 폐기물 수입국 확보에 나섰다. 한국만 넋 놓고 있다가 재활용업체가 집단 수거 거부에 들어간 다음 부랴부랴 대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야단은 맞아야 한다"고 정부 실책(失策)을 인정했다.

환경부 장관·차관에 환경운동 하던 사람들을 앉혔다. 이 정부 들어 시민단체 출신이 정부 요직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 부처 책임자와 부(副)책임자 모두를 시민운동 출신자로 채워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해도 업무 파악과 조직 운영에 허점이 안 생긴다면 그게 신기하다. 환경부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예측 가능하고 시간도 충분했던 상황에서 국민에게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인지 규명해야 한다.

중국은 느슨한 환경 규제와 싼 임금 때문에 선진국들로부터 수입한 폐플라스틱 등을 재가공해 제품 원료나 연료로 써왔다. 중국도 소득이 늘면서 더 이상 폐기물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나선 건 어쩔 수 없다. 응급 대응책만 아니라, 상품 과다 포장을 억제하고 포장하더라도 재활용이 용이한 재질과 구조로 하게 해 폐비닐·폐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 배출 재활용 폐기물에 이물질이 묻거나 담겨 있어 40~50%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체들의 하소연이었다. 가정에서도 비닐·스티로폼·플라스틱 용기는 내용물을 깨끗이 비우거나 씻고 배출해 재활용을 도와야 한다.
-조선일보-

현대차는 노조의 자기 파괴 노동운동을 피해 21년째 국내엔 공장을 더 세우지 않고 해외에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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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영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4~5년 뒤엔 (한국GM처럼) 현대차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현대차 주문량과 수출 물량이 줄면서 빈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공피치'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전기차 시대로 가면 엔진·변속기 공장이 사라져 인력이 최대 70%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 위원장은 "현대차 노조의 30년 투쟁이 사회 양극화(兩極化)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에 노조가 답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작년까지 6년 연속 파업을 벌이는 등 1987년 노조 설립 후 31년 사이 27년을 파업했다. 하 위원장은 "현대차는 임금 투쟁을 통해 대한민국 10% 안에 드는 고임금을 받게 됐지만 (하도급업체와) 비정규직은 착취의 희생양이 됐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노조원들을 설득해 하도급업체와 비정규직 임금을 더 많이 올리고 현대차 임금은 덜 올리겠다고 했다.

하 위원장 얘기는 사실 국민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중국의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은 임금은 한국 근로자의 10분의 1을 받으면서 생산성은 9배가 높다. 이런 기업이 오래 버틴다면 경영이 아니라 마술이다. 현대차는 노조의 자기 파괴 노동운동을 피해 21년째 국내엔 공장을 더 세우지 않고 해외에만 짓고 있다. 현대차는 2009년만 해도 국내 생산 비중이 65%에 달했지만 지금은 겨우 30%를 넘는다. 현대차 노조원들이 고연봉 철밥통을 누리는 동안 노동 약자인 청년 구직자와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못 구하거나 저임금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현대차 2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이상범씨도 작년 10월 "노조가 업무 강도를 낮추려고 사측의 물량 조절이나 인력 재배치를 못 하게 해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노조가 회사 발전과 성장을 더디게 한 것을 반성하고 참회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만큼 절박한 과제가 없다. 자동차 산업은 직·간접으로 연결된 고용 인력이 180만명이나 된다. 현대자동차가 흔들리면 국내 고용 시장은 대형 지진 같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대로면 그 재난을 피할 수 없다.
-조선일보-

한국인을 발탁해 한국 축구를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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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1992년 수교 이후 한국이 자국 발전에 도움만 줄 수 있다면 양국의 불행했던 과거사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걸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22일 문 대통령이 참석해 첫 삽을 뜬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착공식이다. 하노이에 들어설 V-KIST는 베트남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벤치마킹해 추진하는 연구 기관이다. 얄궂게도 KIST는 미국이 베트남전 파병 대가로 한국에 준 선물이다. 미국 측이 대학을 지어주겠다고 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그보다 산업 발전을 위한 연구소를 지어 달라"고 요구해 설립됐다. 이런 과거사가 있는데도 베트남은 자기 나라에 KIST 같은 연구 기관을 세워 달라고 했다.

KIST가 문을 연 1966년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133달러로 100달러 남짓한 남베트남(북베트남은 60달러)과 비슷했다. 이후 KIST는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할 각종 응용 기술을 쏟아냈다. 50년이 흐른 뒤 베트남의 1인당 GDP는 2300달러에 머물러 있지만 한국은 3만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격차 앞에서 베트남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KIST를 보며 전쟁의 아픔을 떠올렸을까. 속으론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V-KIST 첫 수장(首長)에 베트남 과학자들을 다 제쳐놓고 금동화 전 KIST 원장을 임명했다. 그만큼 절실하게 한국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1986년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채택하며 내건 모토가 '과거를 닫고 미래를 열자'였다. 그 기치 아래 과거의 적(敵)들과 손을 잡았다. 지난 5일엔 미 항공모함 USS 칼빈슨이 종전(終戰) 43년 만에 처음으로 베트남에 기항했다. 항모가 입항한 다낭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이 군인과 군수품을 들여온 길목이었지만,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중국과 다퉈온 베트남은 환영식까지 열며 미군을 맞았다.

'과거를 잊은 민족'이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호찌민(옛 사이공)에 들어선 '전쟁 증적(證跡)박물관'엔 미국·한국과 전쟁하며 겪은 참상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베트남인들은 전시물을 보며 눈물을 쏟는다.

베트남은 올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박항서 감독을 앞세워 자국 축구 역사상 첫 국제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는 그 대회에서 4위에 머물렀다. 한국인을 발탁해 한국 축구를 뛰어넘었다. 옛날의 적을 친구로 만들고 축하 박수까지 받았다. V-KIST가 경제·산업 분야에서 이를 재연할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베트남은 사과받지 않고도 한국에 이기게 된다.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이보다 "사과 안 해도 된다"는 사람이, 국가가 더 무섭다.
-조선일보-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이 5인 회의의 결과물이라는 추론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최순실씨의 입김이 이 와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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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쯤 관저 내 침실 앞,  
안봉근 당시 제2부속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부릅니다. 안 비서관이 여러 차례 박 대통령을 부른 뒤에야 박 대통령이 침실에서 나왔고, 세월호 첫 보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세월호 승객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이 지난 뒤였지요.  
  
28일 검찰이 밝힌 박 전 대통령 수사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지금껏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라고 밝힌 사실들과 상당 부분 다른 까닭입니다. 청와대는 당초 박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에 세월호 관련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알렸으나 사실은 달랐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 오전 10시 20분쯤 안봉근 비서관에게서 침실 앞에서 첫 보고를 받았습니다. 앞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이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자 안 비서관이 직접 관저로 이동한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2분 뒤인 10시 22분경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명피해가 발생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로부터 4시간 동안의 행적은 아직 밝혀진 게 없습니다.   
  
 
오후 2시 15분경.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를 비롯해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비서관, 정호성 비서관과 ‘5인 회의’를 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는 수사 결과 역시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이 5인 회의의 결과물이라는 추론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최순실씨의 입김이 이 와중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네티즌들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난다” “울분이 치민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평일 오전 10시20분에도 침실에서 나오지 않는 대통령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인후염 등으로 몸이 안좋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잘 이해가 가지는 않네요. 그 시간이면 보통 사람들은 직장과 학교 등 삶의 현장에서 한창 바쁘게 움직일 시간 아닙니까.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2014년 대통령의 근무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아침에 일어나셔서 주무실 때까지가 근무시간이고 어디에 계시든지 간에 집무를 하고 계시고 관저도 집무실의 일부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그때도 근무 중이었을까요? 침실에서 도대체 무슨 집무를 하고 있던 걸까요?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참으로 독특한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드네요.  ‘e글중심(衆心)’이 다양한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중앙일보-